쪽집게 의사
쪽집게 의사
  • 김창년 칼럼위원
  • 승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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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년 윤앤김내과 원장

"안녕하세요!" 맨 먼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동시에 눈길이 가는 건 진료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환자의 인적사항이다. 나이는 어떻게 될까?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 이런 정보들로 재빨리 조합을 해야 한다. 이 환자는 나한테 뭘 원할까? 개업 10년차가 넘어가면 맞추는 확률이 영도 다리밑에 돗자리를 까는 수준에까지 도달한다.

환자들 역시 그럴 것이다. 이 의사가 과연 믿을 만한 의사일까? 누가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의사인상이 별로인데,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환자도 처음 만나는 의사의 인상이 어떤지, 병원시설은 낡지 않았는지, 간호사가 친절한지 등 이런 잣대로 병원을 평가할 것이다.

돈을 내고 물건을 사건 서비스를 받건 구매자와 판매자와의 이런 신경전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병원의 서비스를 받는 경우는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고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식당을 찾는 사람은 표준화된 메뉴를 가지고 고르기만 하면 된다. 식당 주인은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을 그대로 정성스럽게 가져다 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료의 메뉴는 조금 다르다. 환자는 메뉴의 종류나 가격이나 품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의사가 권하는 메뉴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만을 결정하면 된다.

그래서 의사는 어떤 메뉴를 환자에게 권할지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감기나 단순 복통에 사용하는 처방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고급스럽고 복잡한 메뉴가 들어가면 의사의 고민은 시작된다.

'요즘 많이 피로해요.'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주문이다. 세상에 피로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CF에 나오는 것처럼 '박×× 한병 드시지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민은 여기서부터다. 피로는 각종 암이나 간질환·신장질환·갑상선질환 등 많은 질환의 주 증상이다. 교과서에 나온대로 만성피로의 진단을 하려고 들면 수백만원의 검사비가 나오리라. 그저 삼겹살이나 조금 먹으려고 왔는데 비싼 한우를 갖다 주고는 수십만원의 식비를 내라고 한다면 누군들 화가 나지 않을까.

이제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검사를 위해 온 환자에게 괜찮다고 돌려보내면 환자를 대충 보는 돌팔이 의사가 되고, 그저 영양제만 하나 맞고 갔으면 하는 환자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하자고 하면 돈에 눈이 먼 의사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각종 의학방송 탓에 자신이 어떤 질환일 수 있는지 알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의사가 제시하는 메뉴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적다.

그런데 이런 지식이 주관적인 해석에 의해 편협하게 바뀌게 되는 것이 문제다.  후두암 환자가 목에 이물감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암이 었다는 방송을 보면서, 역류성 식도염으로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는 자신이 후두암에 걸렸다는 확신을 갖고 병원을 찾는다.

아는 사람이 췌장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바로 네이버 검색창에 췌장암을 검색한다. 췌장암의 주증상인 상복통·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와 비슷하면 다음날 병원을 찾는다. 내가 검색해 찾아놓은 답과 비슷하게 얘기하는 의사는 명의고, 내가 생각한 답과 조금 다르게 얘기하는 의사는 실력이 없는 의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사도 환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가 처음부터 깨지고 만다.

의사가 꼭 해야될 것 같은 검사도 환자는 거절하기 일쑤고 꼭 안해도 될 검사는 해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어떤 식으로든 환자의 손해이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환자를 계속 붙잡고 있는 용감(?)한 의사는 거의 없다. 그냥 의사에게 그대로 내 몸을 맡겨 보는건 어떨까!  이 역시 의사들만의 편협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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