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와 함께 40년 윤정섭 가조훼리 기관장

“가조도에 다리 놓이면 뭐 할래.”

지난 1997년부터 가조훼리와 동고동락하며 가조도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고 있는 윤정섭(59·가조도 진두마을) 기관장에게 최근 그를 아는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윤 기관장은 그냥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올해 12월(완공 예정) 가조섬다리가 완공되면 가조훼리가 역사속의 뒤안길로 묻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년을 넘게 가조훼리와 함께 하다보니 눈을 감아도 배 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소리만 들어도 배 상태가 어떤지 훤하게 꿰뚫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가조도가 고향인 그는 1975년 제대 후 부산 영도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신혼살림을 하면서 부산 선적의 배를 타다 돈을 벌기 위해 원양어선을 탔다.

모로코, 스페인, 러시아, 남미 등 세계의 바다를 오가며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관부에서 일을 시작해 기관장이 됐지만 생각만큼 돈이 되지 않았다.

1984년 고향 가조도로 돌아온 그는 자망어업을 몇 년 하다 통영선적의 게통발배를 타고 동지나(동중국해)에서 조업을 하다 월선, 중국에서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배에서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모두 경험했다. 육영수 여사의 저격소식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소식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도 모두 배에서였다.

가조도에 다리가 놓인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나에겐 어떻게 보면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고, 목숨보다 좋았던 그리고 40년 가까이 들어오던 ‘뱃놈’이란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서글프다고 한다.
10년 동안 가조훼리는 큰 충돌사고나 인명피해 없이 가조도 사람들의 발이 돼 왔다. 명절이나 여름이면 성포와 가조를 새벽부터 밤까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차를 9대 밖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 안에서 차를 잘 대보라고 고함도 지르고, 싸움도 많이 했지만 그것도 올 여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명절은 추석이 한번 더 남았지만 올 추석에 맞춰 가조섬다리를 임시 개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마지막이다. 가조훼리를 타고 가조도로 봄을 구경하러 다니는 육지손님들을 모시는 것도, 뜨거운 여름을 피해 피서를 가는 손님들도, 가을 가조도 낙조를 감상하려는 손님들을 맞는 것도 모두 올해 딱 한번 뿐이다.

선장은 8명이 바뀌었지만 기관장은 잠시 쉴 때를 제외하곤 윤씨가 도맡았다. 태풍경보가 내려지지 않으면 가조훼리는 1년 365일을 쉬지 않고 가조도와 성포를 오간다.

지금 뒤돌아보면 40년 가까이 뱃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가조다리가 놓이면 뭐 할거냐’ 주위에서 많이 물으면 웃고 마는데 사실 걱정이 많단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아는 것이라곤 배와 바다뿐인데…. 육지직업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 두려움이 앞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윤 기관장은 “40년 가까이 바다와 배에서 뱃놈으로 살다보니 바다가 주는 것만 받을 뿐 더 이상의 것은 가져서는 안 되고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욕심을 버릴 줄 알게 되면서 세상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차를 배에 잘 못 싣는다고 고함치며 욕도 많이 했는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며 가조훼리 승객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가조 사람들은 물론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까지도 다 알고, 차를 보면 누구 차인지 다 아는데…. 가조훼리는 아직도 힘이 많이 남았는데.

세상의 ‘편함’때문에 사랑과 정을 가득 실고 바다를 가르던 차도선은 곧 역사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라며 끝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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