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경을 처음 쓴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때 이미 시력이 좋지 않았을 테지만 가난했던 촌에서 안경이란 언감생심 아니겠는가? 아마 그때 벌써 두 눈의 시력이 큰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물체를 보려고 하면 잘 보이는 한쪽 눈을 중심으로만 사용하다 보니 다른 한쪽은 사팔뜨기처럼 되었다. 주일학교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만나 아무래도 눈이 나쁜 것 같으니 안경을 맞춰주자고 설득해, 나를 데리고 부산 광복동에 있는 제일안경점까지 가서 안경을 맞춰 주셨다. 안경 너머의 세상은 참으로 밝고 좋았다. 사팔뜨기 같았던 눈도 안경을 쓰고 나니 말끔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안경을 쓰고 있으니 내 안경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어릴 때 별명 가운데 유난히 듣기 싫었던 것 중 하나가 '안경잡이'였다. 안경의 불편함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만나면 건방지게 안경을 쓰고 있다고 나무라니 어떨 땐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예법 중의 하나가 윗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1890년대의 영국의 여류탐험가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회고록에도, 고종 임금을 배알했을 때 보니 왕세자 순종은 옆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한 근시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이 승하하고 문상을 받을 때 예법에 따라 안경을 쓰지 않았고, 안경 쓴 조문객이 오면 아예 돌아앉아 조문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헌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병구는 눈이 나빠 안경을 쓰지 않고는 아무 일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앞에서 안경을 썼다가 헌종이 크게 진노해 나무라자 그 두려움으로 집에 돌아와 자결했다고 야사는 전하고 있다. 구한말 경술국치 소식을 접하고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은 20대부터 안경을 썼다. 심한 근시에 오른쪽 눈은 사시일 만큼 시력이 나빴다. 매천의 초상화에 나오는 둥근 안경이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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