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촌스럽던 90년대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가슴 뛰도록 좋았다. TV보다 라디오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멋이 있었다. …삐삐만 있어도 무슨 대단한 사람인양 여겼고, 호출기 때문에 공중전화 부스는 언제나 붐볐다. 빨간 우체통은 그 시절의 상징과도 같았고, 여행의 시작과 끝은 버스 안에서 '관광버스춤'으로 소란하기 일쑤였던 시절이다. …우리가 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이 너무나 발전된 디지털 시대가 아니고, 그렇다고 아버지 세대의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때도 아닌, 딱 1990년대 그만큼의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행복은 속도의 역이라고 한다면, 일상의 여유가 느리지만 감동을 주던 그 때가 그립다. 메일보다는 소인 찍힌 편지가 가슴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고, 토속적 탐미성과 낭만이 있었던 그때가 가장 사람살기 좋았다.' 고혜량 선생의 수필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며'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10대와 60대가 같은 문화로 공감할 수 있는 제3의 문화를 일컬어 '뉴트로'라 부른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가 합성된 '새로운 복고(Newtro)'를 뜻한다.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려가기 보다는 오래된 것을 보고 즐긴다. 복잡한 장치나 모양보다는 단순함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올해의 수영복은 비키니보다 원피스 스타일이 유행한다거나, 촌스럽던 일명 땡땡이무늬도 새로운 패션이 된다.

1924년 출시한 원조 소주 '진로'가 새롭게 선보였다. 70·80년대 파란색 진로라벨을 재해석한 하늘색 디자인을 채택했고, 상징인 두꺼비도 가운데에 넣고, 眞露라는 한자도 그대로 썼다. 다른 건 당시 35도였던 주도를 16.9도로 변경한 것뿐이다. 올해 4월25일 출시했는데 두 달 반이 채 되지 않는 72일만에 판매량이 1104만병을 기록한 것은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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