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인민재판
처참한 인민재판
  • 이승철 시민기자
  • 승인 2019.0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로수용소 구석진 곳에서 포로들이 같은 동료를 인민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광경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사나이는 십자가 대신 철조망을 뒤로하고 양팔과 다리를 벌린 채 손발이 묶여 있다.

그 앞에 인민위원장인 듯한 사람이 지휘봉 같은 막대기를 들고 서 있고 좌우로 몽둥이와 대창을 들고 여럿이 둘러 서 있다. 그리고 예리한 칼날을 든 사람도 보이고 돌멩이를 든 사람도 보인다. 철조망에 묶여 있는 사나이는 얼굴에 피멍이 들어 있고 옷에 묻은 핏자국은 고문을 당한 듯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하다.

인민재판에 모인 군중(그들이 말하는 인민)들은 사나이를 향해  '죽여라 죽여라' 외치며 아우성을 지르는 것 같은 분위기다. 정지된 사진 속에서도 당시의 처참했던 상항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이 사진은 1977년 대한 반공 청년단 송정택 단장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 달도 못돼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그해 9월15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많은 포로가 잡혀 거제도에 포로를 수용했다. 수용소 안에서 좌·우익으로 나눠지면서 사상전이 벌어졌다. 그때 포로들 중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가 반공청년단이다. 공산군으로 같이 나왔던 동료가 반공이란 이름으로 등을 돌린데 격분한 좌익들은 반공포로를 비롯해 공산주의를 이탈하는 사람을 색출해 시범적으로 공개 처형했다.

인민재판이란 말 그대로 인민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것으로 모두 각본에 짜여져 있는 대로 하는 것이다. 위원장은 '이 동무에게는 특 일급이요' 하면 몽둥이로 500대의 태형을 때린다. 일급은 300대, 이급은 150대, 3급은 50대다. 아무리 건강한 장정이라도 10대만 맞으면 축 늘어져 죽고 만다고 한다.

필자는 포로수용소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다. 반공포로로 석방된 사람과 피난민 당시의 주민들을 만나서 녹음도 했다. 좌·우익의 대립과 인민재판 등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사상적인 이념보다 더 무서운 인간적인 갈등이 저지른 죄악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