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집 떠나면 개고생'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남자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가 이 말이었다. 아침저녁 조·종례 시간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니 가출할 생각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가출하고 싶어 했다. 이유를 들어보면 학생들이 정말 집을 떠나고 싶을 정도의 힘든 일도 있었지만 정말 별 것 아닌 일에도 단지 사춘기라는 이유만으로 막연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거나, 친구 누가 가출을 했는데 나도 한 번쯤 가출 해서 부모와 친구들의 관심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한 몫을 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을 입에 달고다닌 나는 그 말에 스스로 세뇌당한 듯 도무지 어디를 가려고 하질지 않았다. 실제로 어쩌다 여행이라도 가보면 고생스러웠다. 아무리 패키지로 여행을 가도 집 떠나니 불편하고 매사가 편치가 않았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색다른 감흥이나 새로운 나라에서의 배움은 둘째 치고 먹는 것 자는 것 등 일상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없으니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알고 보면 나는 참 알뜰하면서도 재미없는 당신이다. 어쨌거나 새해 들어 또다시 어떤 나라로 가게 됐다. 얼떨결에 여행팀에 합류를 했는데, 아 글쎄 같이 가기로 한 나라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세상에 좋았다는 말끝에 항상 붙어 다니는 말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친절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행을 다녀온 후 블로그나 카페에 여행사진과 후기를 남겨서 다른 사람이 여행준비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대부분이 여행 내내 마음조리며 가방과 핸드폰에 신경을 쓰느라 뭘 마음 편히 다니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유럽을 다녀온 몇몇 지인들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면서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서 생생함을 더해줬다. 잘생긴 외국청년이 다가오길래 헤벌레 청년을 바라보는 사이 다른 일당이 지갑을 쏙 빼갔다든가, 십대 청소년들이 다가와 뭘 물어보는 사이 핸드폰을 집어갔다든지, 심지어 식당에서 밥 먹는데 옆에 둔 여행가방을 마치 자기 가방인 양 가지고 간다든지.

소매치기 당한 후기도 다양했다. 한국인 관광객과 여행코스가 같았던 일본인 관광 가이드는 소매치기를 쫓아가다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건까지 있었다하니 어째 좀 나라 이미지가 그랬다. 수천 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유럽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아직까지도 위대한 작품이 건재하며 그 문화유산으로 후손까지 혜택을 보게 한 나라에서 어찌 후손들의 도덕교육을 등한 시해 이렇게 가는 곳곳마다 소매치기가 들끓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나는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만큼 안전한 나라가 또 있는가. 비록 정치가 살짝 삐거덕거리기는 하고 곳곳에 잡음들이 새어나지만 밤이든 낮이든 소매치기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 몇 나라나 되겠는가.

언젠가 계룡산 등산을 갔다가 브라질에서 온 외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안전함'이라고 했다. 자기 나라에서는 여자가 낯선 곳에서 혼자 등산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얼마 전 만난 제자 중 한 명이 미국 어느 유명도시에서 유학 중인데 그 도시는 해지면 무서워서 바깥에 못나간다고 했다.

이 정도면 우리 대한민국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 누가 뭐래도 살기 가장 좋은 나라가 아닌가? 나는 2019년 한 해도 이 안전한 나라에서 삶을 시작한 것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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