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량 수필가
고혜량 수필가

사람들이 떠난 빈집은 모두가 이럴까? 허물어진 나지막한 담장너머로 늙은 무화과 한그루. 농익다 못해 터져버린 꽃술에서 발그레한 빛이 배어나온다. 그 색에 현혹된 찌르레기는 마치 주인인양 분홍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마당 한편에는 주인이 심었을 리 없는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당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세간살이와 짝 없이 버려진 헌신짝만이 한때 사람이 살았음을 가늠케 할뿐이다.

걸터앉은 마루는 낯선 사람의 방문에 놀랐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켜켜이 쌓인 마루의 겉더께는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한다. 내 시선이 낡은 문짝 하나에 머문다. 돌쩌귀를 벗어나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는 방문이 넘어질 듯 위태롭다.

저만큼 물러난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인지 방문의 동그란 손잡이는 처음 있었던 그대로 암팡지게 자리하고 있다. 한 때는 사람의 온기에 윤이 나도록 반질거렸을 테지만 이제는 산화되어 붉게 녹슨 손잡이. 혼자서는 도저히 넘지 못하는 시간을 흔들어 깨울 누군가를 동그마니 기다리는 것일까? 아직도 자기의 소임이 남았다며 묵묵히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고집스럽게 버티고 선 손잡이의 동그라미가 선명한 추억 한 자락으로 나를 흔들어댄다.

방문의 손잡이는 한 생명이 탄생하는 가장 숭고한 시간에도 산모와 하나가 된다. 동그란 테두리 속, 자신의 뚫린 가슴에 하얀 천을 집어넣고 옭아매는 손길에도 가만히 순응한다. 문고리가 뽑혀나갈 것 같은 힘으로 산모는 자신의 목을 죄고 비틀어 대지만, 그때마다 더 간절한 맘으로 자리를 지켜낸다. 새 생명이 세상을 향한 첫 울음소리를 내는 그 순간까지 고통의 시간을 함께 나눈다.
배목에 늘 꽂혀있는 숟가락은 가끔 엄마의 눈길이 미치지 못할 때, 아이의 안전을 위해 채워지는 날도 있었다. 늦되거나 올된 아이 할 것 없이 때가 되면 아이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일어서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문고리를 잡고 혼자 일어서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첫 발걸음을 떼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문고리를 엄마의 손인 듯 잡고 돌쩌귀의 삐걱대는 소리를 들어가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어설픈 걸음걸이를 연습한다. 그렇게 수없이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야무진 걸음걸이를 완성시킨다.

숙제 안한 벌로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뽑는 것이다. 혀끝을 살랑거려도 앞뒤로 힘없이 흔들거리는 치아지만 도무지 이를 뽑는 두려움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엄마는 이불호청 꿰매는 두꺼운 실로 이를 감아 문고리에 묶고 재미나는 옛날 얘기로 마음을 뺏어놓고는 순식간에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이가 뽑힌 줄도 모르고 입을 벌리고 있다가 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를 보는 순간 그만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오래된 집의 풍경과 문고리를 통해 새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아이들이 커가는 모든 성장 과정을 흑백TV 속의 드라마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감상한 느낌이다. 이제는 어느 시골을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긴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언젠가는 이 집도 허물어 질 것이고 간신히 매달려 있던 방문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다보면 머잖아 이 자리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겠지. 온전하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남아 있어 떠올릴 수 있었던 추억하나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허허롭다.

무화과를 정신없이 쪼아대던 찌르레기가 자동차 소리에 놀랐는지 떼 지어 포르르 자리를 뜬다. 주인도 새들도 떠난 빈집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개켜놓으며 나도 걸음을 옮긴다. 자꾸만 동그란 문고리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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