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이 불렀던 '모란동백'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고 했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 나 어느 변방에 /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 나를 잊지 말아요.'

1930년 정지용·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을 통해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매우 유명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영랑에게 있어 모란의 낙화(落花)는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된다. 모란은 꽃 중의 왕(花中之王)으로 한자어로는 목단(牧丹)이다. 4월 말경에서 5월 초에 피는 꽃인데, 화투의 그림에는 6월 목단으로 나타내고 있다. 모란과 작약은 헷갈리기 알맞은 꽃이다. 모란이 지고 나면 곧 이어 피는 꽃이 작약이기 때문이다.

모란은 부귀화(富貴花)라고 해서 궁궐에서만 재배되다가 귀족을 거쳐 부잣집으로 분양됐다. 당나라 때 모란 한포기의 값이 비단 25필이었다니 일반인은 심기 어려운 귀한 꽃이었다. 작약은 함지박처럼 큰 꽃을 피운다 하여 '함박꽃'이라고 불렀으며 집 마당에 많이 심었다. '작약은 한번 화가 나면 3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럴 때는 반드시 인분을 주어 화를 풀어야 한다'고 유박은 '화암수록'에서 말하고 있다.

모란과 작약의 구별은 꽃이 피는 시기와 잎 모양이 다르지만, 분명한 특징은 모란은 목본식물 곧 나무고, 작약은 초본식물 곧 풀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요즘은 개량종이 많이 나와서 구별이 어렵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당나라 왕이 보낸 모란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로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여기기 쉬운데 사실 이것은 오해다. '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향'이란 뜻의 '국색천향(國色天香)'으로 불린다. 이제 모란도 작약도 떠나간 계절에 수국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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