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 사망'이라는 기사가 떴다. 언론에서는 '더 많이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돈을 번 죽음의 상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사실은 노벨 형의 사망을 신문사의 실수로 오보한 것이다. 노벨은 그 기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잖아도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파괴와 죽음의 도구로 쓰이는데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류를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여 노벨상을 설립하게 된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은 화학과 물리학이 기초가 되니 상(賞)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했으니 의학상도 줄만하고, 무기보다는 인류평화를 위해 사용해야하므로 평화상도 필요하다. 그런데 왜 엉뚱하게도 문학상이 거기 끼어들었는지 아리송하다. 그렇다고 노벨이 유명한 문인도 아니었다.

18세 때 '수수께끼'라는 장시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성공했다면 과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시인이 됐을지 모를 일인데, 불행하게도 수준이하로 인정받지 못했다. 만년에 희곡집을 내기도 했지만 이런 서투른 작품은 위대한 인물에 흠이 된다며 사후에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기웃거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문학에 대한 한 때문에 노벨문학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노벨상 중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문학상이다. 과학분야는 그 업적이 논문으로 발표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고, 평화상도 후보군을 짐작할 수 있지만 문학상만은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빗나가거나 거론되지도 않던 사람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노벨상은 누가 후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상과정의 정보는 50년 후에라야 공개되기 때문이다. 해마다 우리나라 누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다고 야단인데 사실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금년도 노벨문학상은 유명 사진작가의 성추문 미투로 인해 시상이 취소됐다. 대신에 내년에 두 명을 시상하겠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했지만, 그조차 내년이 돼도 시상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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