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갑질
아름다운 갑질
  • 거제신문
  • 승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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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봄이 쓰러져 가고 있다. 시간을 견뎌 맺은 하얀 꽃잎들은 급하게 메운 푸름에 사라져 간다. 그래도 사이사이 피어나는 여러 꽃들로 하여 마음을 살필 여유가 있으리라. 봄에 피는 꽃 중에 산에 핀 복사꽃을 보면 순서 없이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산중턱 논 옆 개울가 분홍의 색으로 자리한 꽃그늘을 보면 아직도 아버지의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 나를 발견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지게를 지기 시작했으니 노동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여린 마음을 뭉개기 일쑤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린 감성을 짓누른 것은 노동이 아니라 당신의 권력이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혼자서 맑은 돌 베고 잠들고 싶었던 복사꽃 그늘에는 어린 마음 대신 막강한 아버지의 권력이 누워 있었다. 엄한 권위가 스린 연분홍 꽃그늘 주변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아름다워야 할 봄의 언덕과 산들은 아버지의 새파란 감시로 늘 불안하였다. 내게 아버지는 갑중의 갑이었던 셈이다.

개울 물소리를 들으며 연한 풀잎처럼 순하게 놀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되었던지, 차라리 봄은 감옥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그토록 엄하던 당신의 권력이 녹슬었고, 새파랗던 감시마저 시들어 지금의 복사꽃 그늘은 그저 서럽다가도 이제는 돌아누운 산소처럼 편안하기도 하다. 아버지의 권력과 감시를 벗어난 지금은 내가 다시 아들의 권력자나 감시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물어본다.

내게 갑중의 갑인 아버지의 어떤 명령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고 복종으로만 사랑을 돌려받을 수 있는 엄중한 관계였다. 항상 을의 입장이었던 내가 결혼을 하고 그 아버지의 갑이 되고자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나의 갑질은 잘 먹혀들지 않았고 아들은 반항하였으며 내게는 아버지의 권력과 아들을 다룰만한 능력이 없었다. 훨씬 좋은 환경과 조건을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내 감시에서 벗어났고 지시에는 반기를 들었다. 별 말씀도 없이 나를 순하게 길들였던 아버지의 갑은 나와는 다른 그것이었다는 것을 아들이 군 입대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갑에는 가장의 책임과 당신의 지위가 주는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였지만, 나의 갑에는 내가 만족할만한 아들의 결과적 행동이 우선이었고 아들의 못남이 주는 일순간의 불편과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였다. 내가 어릴 때는 순하게 말을 잘 들었는데 어떻게 내 속에서 너 같은 아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 분하여 호통을 쳤으니, 아들의 입장이야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연일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대기업의 갑질이나 횡포가 뉴스다. 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며 싸움을 부추기도 한다. 완벽한 도덕주의가 가능했던 7,80년대에는 갑의 형태가 당연하게 여겨졌었고 틀 잡힌 도덕에 권력과 행정력이 뒷받침되면서 순종과 인내가 능력이 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나친 도덕주의에 지친 시민들이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아름다운 공존을 원하는 시대정신으로 바뀌면서 갑을의 구조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엄격한 상하관계나 도덕적 완벽주의는 다양한 계층과 입장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숨막히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배려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위계가 여러 계층을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게 하려면 서로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인정하고 각자의 고통을 미루지 말고 먼저 감내해야 되지 않을까.

어버이 날이라고 여자 친구를 데리고 찾아 온 아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제법 여유 있는 청년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나의 갑의 형태가 조금씩 아들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제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의 잘못된 갑의 형태가 책임감 있고 너른 품과 깊은 배려가 있는 갑의 형태로 바뀌고 갑이 갖는 불편을 감내할 수 있는 멋진 아버지가 되어 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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