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복 거제수필문학회
정현복 거제수필문학회

장정길 형님 올해 74세, 나보다 열 살이나 많으신 분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삭개오"처럼 작달막한 키에 체구도 왜소하다. 고향은 전남 완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뭍으로 나와 줄곧 부산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오신 억척같은 분이시다.

20대 초반부터 양복점 시다로 들어가 일하면서 착실히 기술을 배우고 익혀 변두리 동네에 양복점을 차려 운영하면서 돈을 꾀나 벌어 집도 장만하고 시골에 밭데기도 사 놓을 만큼 경제적으로 다소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가 싶었고 불운이 닥쳐 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더란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런데 1970년대 이후부터 기성복이 판치는 세상이 되면서 형의 양복점 사업도  차차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40대 초반 적잖은 부채를 안고 천직이라 여겼던 양복쟁이 업을 접어야만 했단다.

이후 호구지책으로 공사판 노가다, 고등어배 선원, 영남 일대 오일장을 전전하며 방물을 파는 장돌뱅이 등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팍팍한 삶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기력이 쇠약해 진 60대 중반부터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을 해 오고 있는데 올해가 딱 십 년째란다. 부산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을 해 오던 중 6년만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렸다고 하는데 당시 실제 나이가 70세였는데 행정착오로 호적상 나이가 74세로 되어 있는 바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아들 둘을 결혼시켜 내 보내면서 빚을 얻어 아파트를 마련하는데 보태주고 그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라 더 벌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여서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지만 그 나이에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더란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다행히 지인으로부터 거제에 있는 자이아파트에 경비원 자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이력서를 넣었더니 쫓겨난 아파트 경력 덕인지  용케 채용이 되어 4년째 일을 해 오고 있다고 한다.

나도 금년 초에 같은 아파트 보안요원으로 입사하여 10개월째 정길이 형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나를 포함한 보안요원 4명, 경비원 8명이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정길이 형이 제일 연장자이자 최고참이다. 형은 부산의 후미지고도 낯선 동네인 초읍동 “원당골”이란 산중 마을에 사는데 거기서 이곳 아파트까지 오려면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거제행 직행버스 등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하고 출, 퇴근하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출근시간은 늦어도 오전 7시반, 새벽 세시 반에 기상하여 준비를 한 다음 네 시에 집을 나서지 않으면 제 시간에 출근할 수 없다고 하니 강인한 생활력과 정신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동안 한 번도 결근을 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려심 깊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재활용 수거장 정리정돈 등 각종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불평 없이 척척 잘도 해 내시는 분이시다.

나는 그 분에게 “장가이버”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손재주가 뛰어나서 고장이 나 입주민이 버린 선풍기며 냉장고며 전기 곤로며 회전의자 같은 나부랭이들을 주워와 뜯고 끼우고 맞추고 하여 완벽하게 고쳐 비품으로 재활용하고 동료들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자기의 수요를 스스로 재생산하여 충당하는 자급자족의 귀재요, 생활의 달인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수면부족 등의 고통에 시달려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정길이 형을 바라보면서 “저 형도 거뜬히 해 내는 일을 나이 어린 내가 왜 못한단 말인가”하고 마음을 다 잡은 것이 힘든 고비를 넘기는 동기가 되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 될지 모르는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만족을 느끼며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해 볼 생각이다.

오늘 아침에도 형은 마치 소풍 나온 사람처럼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도시락 통이 든 작은 캐리어를 끌고 내가 근무하는 보안실에 나타나 출근부에 시원하게 싸인을 한 다음 콧노래 흥얼거리며 당신의 근무지인 정문 경비실로 향했다.

나의 길라잡이요 롤 모델이신 정길이형의 건승을 빌며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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