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부사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요구하는 장면은 요즘으로 치면 전형적인 미투 깜이다. 관기는 관청행사 때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 예능이 주임무였기 때문에 수령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여자의 정절을 뺏을 수는 없었다. 춘향은 이몽룡과의 혼인으로 비록 관기의 적(籍)에서 빠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변사또가 춘향을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미 월매가 관노비로 그 자식 또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탈민녀설화'란 갑의 위치에 있는 관리가 을의 위치에 있는 여자의 정절을 빼앗으려는 이야기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도미(都彌)'설화다.

백제 개루왕(蓋婁王) 때, 도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내는 아름답고 행실이 발랐다. 왕이 도미의 아내를 탐냈다. 왕은 도미를 불러 "부인의 정절이 높다고 하지만 왕인 내가 좋은 말로 꾀인다면 넘어갈 것이다" 그러자 도미는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제 아내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도미더러 아내를 시험해 보자며 도미를 궁에 잡아두고, 밤중에 도미의 집으로 가서 왕임을 밝히고 그녀에게 말하기를 "도미와 내기에서 내가 이겨 너를 내 아내로 삼을 것이니 너는 이제부터 내 것이다" 하며 왕이 도미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려하자, 아내는 몸을 씻고 오겠다며 나와 계집종을 잘 꾸며 대신 들여보내 위기를 면한다. 다음 날 아침, 속은 줄 안 왕은 도미에게 죄를 물어 그의 눈을 빼어 버리고 작은 배에 태워 흘러 보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범하려하자 도미의 아내는 용케 궁을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으나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조각배 한 척이 밀려왔다. 아내를 실은 배가 천성도(泉城島)에 이르자 거기에 눈먼 도미가 살아 있었다. 극적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고구려 산산(蒜山)땅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권력으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다는 오만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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