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임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원
남향임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원

틀니 지원사업을 도지사공약사업으로 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올 한 해 연간 100여분의 어르신에게 의치를 무료로 지원해주는 혜택이니 시민들을 위해 매우 감사한 일이다.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연세가 많으신 노인 한 분이 자동문을 못 열고 지팡이를 짚고 계신다. 들어오시라고 문을 열어드리니 원탁 의자에 앉으신다.

"네가 틀니 때문에 물어 볼 게 있어 왔소."

내용을 들어보니 틀니 비용을 지원받으러 오셨다.

"어르신, 그런데 올 해는 예산을 다 써버려서 돈이 없어서 지원을 못 해 드립니다."
"뭐라꼬?"
"내가 귀가 먹어 잘 안들리거마!"

양손 팔꿈치를 들어서 원더우먼처럼 크게 엑스자를 표시한다. 목청을 크게 높여본다.

"돈이 없어서 안된다구요! 내년 연초에 돈이 내려오면 그때 오세요!"

그랬더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에 뒷통수가 얼얼해진다. 멘탈 붕괴라는 언어가 이럴때 쓰던 말인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듯하다.

"아이고! 내가 내년에 살지 안살지도 모르는데, 우째 기다리라꼬!"

그때 착신 해놓은 전화가 울려서 출근한 치과 선생님에게 맡기고 당직실로 내려간다. 전화민원을 해결하고 돌아오니 치과 선생님이 할머니 하고 또 한창 얘기 중이다. 의사 소통이 잘 안돼 할머니는 자녀와 다시 오기로 하고 귀가했다.

선생님이 할머니와 있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함박꽃을 피운다. 아침 출근길을 나섰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군인을 보고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에고, 저렇게 현장에서 나랏일 열심히하는 군인도 있는데, 보건소에서 내 면허로 사회봉사 활동하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해야지' 하고는 축 처진 어깨를 다스리며 3년 군 복무에 대한 시름을 달래고 터덜터덜 출근했다고 한다.

주사님의 바톤을 받아서 할머니에게 의치사업 현황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는데 할머니의 말씀에 크게 빵터졌다.

"주사님,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구요. '내가 내년에 살아 있을지, 우찌될지도 모르는데, 우짜그고, 고마 올 해 해주소'라고. 할머니가 그리 말씀하시는데 저는 쓸데없이 한탄만 하고 그랬습니다. 한 수 제대로 가르쳐주시네요. 허허허 허허허……."

대한민국 남아로 태어나 군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할머니의 절박한 운명이 군인의 운명을 하루 아침에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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