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거제시청문학회
김은경 거제시청문학회

꿈에 아버지를 보았다. 잘 살고 있느냐? 고 물어보신다.

엄마한테 꿈에 아버지를 보았다며 안부 전화 드렸다.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하신 엄마는 아침마다 아버지 영정을 보면서 "잘 주무셨소?"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신다. 동생과 살고 계신 엄마는 동생이 직장에 나가고 나면 하루 종일 혼자 지내신다. 적적하지 않게 반려견을 분양해 드릴려고 했으나 엄마는 동물은 싫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5년 전 심한 감기로 입원하였는데 새벽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가족에게는 어려운 분이셨다. 엄하고 규칙을 강조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공직이 천직이었던 분이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엄마, 딸 일곱이 한 지붕 아래 살았다. 북적이며 딩굴고 살았던 그 시절이 제일 그립다. 아버지와 오래된 추억이 떠오른다.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게 됐다. 지인의 도움으로 도로주행과 고속도로 주행을 한번 한 후 혼자서 연습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자랑을 하고 싶었다.

1993년도에는 여성들이 운전을 많이 하는 시기는 아니었다. 혼자서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했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거북이처럼 기어가듯 운전하면 뒷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집 앞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나오셨다. 차를 언제 샀는지 궁금해 하셨다. 그리고 대견함과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셨다. 그 후로 토요일 마산 집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차 키를 받으셔서 세차도 해주시고 청소도 해주셨다. 아버지의 스케줄은 주말로 짜여 졌고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친척들 경조사나 고성 큰아버지 댁에 가실 일이 있으시면 토요일로 약속을 잡으셨다.

내가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아버지는 옆 좌석에 앉으셨다. 거제나 통영까지 같이 동행해 주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혼자서 조용히 가고 싶은데 두 시간을 대화하면서 가는 게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철이 없었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겨울 아침 통영까지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자판기에서 율무 차를 뽑아 마시는 것은 아버지가 매주 월요일마다 하는 행사처럼 하나의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버스 타시며 가시는 아버지 뒷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일을 안 하니 갑자기 늙어지더란 퇴직한 선배 공무원들의 말이 생각난다. 아버지도 퇴직 후 나침반을 잃어버린 등산객마냥 무기력함을 보여 준 것은 사실이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겠다.

언제나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꿈에 보았다.

지금 하늘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희는 잘 살고 있느냐?"고 물어 보시는 듯하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 걱정 마세요. 잘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파란 하늘이 오늘은 더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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