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 항거해 동남권 거점으로 정치활동
정치개혁과 고도성장으로 지지율 고공행진
외환위기와 권력비리로 말년에 냉대 받아

지난 22일 장목면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 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은 추도사, 추모시 낭독, 추모영상 상영, 추모공연, 헌화, 서거 2주기 소원지 달기, 추모 사진전 관람 순으로 진행됐다. 권민호 거제시장, 김한표 국회의원, 반대식 시의회 의장, 김 전 대통령 친인척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권민호 시장은 추도사에서 "불의에 항거하며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날의 외침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했다"며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때에도 당신께서는 역사적 소명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떠한 억압에도 어떠한 고난에도 결코 무릎 꿇거나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정부 이끌어

김한표 국회의원은 김 전 대통령 자택경호와 청와대 가족경호팀장을 했던 인연과 추억을 회고하며 "어떠한 억압과 고통도 이겨내고 군사독재의 누적된 폐해를 단숨에 걷어낸 분이다. 가택에 연금될 때는 근처에 서성이기만 해도 잡혀가던 서슬퍼런 시대였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잠시 살고자 영원히 죽는 길을 선택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말했다.

추도사에 이어 윤일광 선생이 지은 추모시 '거산, 그 이름 죽어 천년을 가리라'를 반대식 거제시의회 의장이 낭송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린 서거 2주기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거제에서 성장한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정계에 입문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모습,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해 개혁을 이끄는 장면에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추모공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에게 자주 불러준 '메기의 추억', 그리고 행사장에서 자주 불렀던 '청산에 살으리랏다' 등이 테너 조윤환과 소프라노 김성경의 무대로 꾸며졌다. 공연 후에는 권민호 시장, 김한표 국회의원, 반대식 거제시의회 의장 등의 헌화가 이어졌다.

민주화 운동은 '돌직구'…가족에게는 인간적 면모

"나를 해외로 보내려면 죽인 다음에 시체를 부치는 방법밖에 없다"며 독재 권력에 과감히 맞섰던 민주화의 큰산 김영삼 전 대통령. 특유의 돌직구 같은 추진력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일이 잘 안 풀리면 선두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최초의 민간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했고 군부세력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 지방자치제 실시, 금융실명제 전격 시행 등으로 지지율이 90%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임기 말에는 IMF 외환위기를 맞이해 지지율이 6%대로 추락했다. 경제환란과 더불어 아들 김현철씨 등 친인척·측근 단속에 실패해 퇴임 이후에 국민에게 냉대를 받았다.

1928년 장목면 대계마을에서 출생한 김 전 대통령은 만25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이가 더 어렸는데 호적을 고쳐서 출마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는 부정한 권력과 불의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이면서도 가족과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자주 보여줬다.

추도식에 참석한 김 전 대통령의 조카 김혜정씨는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엄혹했던 시절,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족들에게는 자상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경제·민생도 노력했지만 끝이 나빴다

대통령 임기 말과 퇴임 후 지지율 폭락의 원인인 IMF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김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논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지만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경제와 민생에 관심을 기울인 지도자였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집니다"라는 충격 선언으로 시작된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고 했던 IT산업 드라이브, 그리고 일본의 주요 수출산업과 '맞짱'을 떠보겠다는 세계화 선언 등이 작금의 한국경제 위상에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1995년 실질경제성장률 10%, 실업률 2.1%을 달성해 이전 노태우 정부 때보다 더 화려한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국민들은 산이 높았던 만큼 깊은 골을 경험해야 했다.

퇴임 이후에도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 야생마처럼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던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11월22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숨지기 전에 차남 김현철씨에게 '통합과 화합'이라는 말을 필담으로 써줬고 이것은 유언이 됐다. 필담을 받아든 김씨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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