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2016년 4월2일자 '조선일보'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을 화두로 기사가 보도됐다. 미국 워싱턴에서 핵 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우리 대통령께서 한·중 정상회담 석상에서 중국 '시' 주석에게 "무신불립이란 문구가 기억난다"면서 "양국 관계를 이끌어가는 기본정신은 상호존중과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다. 이에 앞서 2014년 방한을 앞두고 중국 '시' 주석이 2014년 7월2일자로 조선일보에 보낸 특별 기고문에서도 "무신불립의 정신으로 양국 간에 믿음을 쌓아가자"고 했었다.

2011년 10월이었다. 상도동 어르신 댁에, 고향 향인회의 송년모임에 참석해 주십사 방문했을 때다. 옹색한 응접실 중앙 벽면에 직접 쓰신 휘호 '無信不立'이 눈에 들어왔다. 국가 경영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덕목을 마음에 새기고 계셨지 싶었다. 그 휘호 아래서 그분과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했다.

무신불입은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한문으로, 국가경영에 관한 제자 '자공'과 스승 '공자' 사이의 문답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국가경영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첫째로는 '식량(足食)'을 꼽았다. 먹고 사는 것, 즉 물질적으로 자본과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군대(足兵)'다. 자위력, 병사들과 무기 등의 군사적인 힘이 있어야 국토를 방위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民信之)'다. 백성들이 국가를,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공은 스승에게 이 세 가지 요소 중 부득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물었다.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나머지 두 가지, 식(경제)과 신뢰 중에서 하나를 더 포기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식(去食)', 먹는 것을 포기하라고 답했다.

공자의 논리는 간단하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어떤 국가나 조직이든 그 존립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국가도 조직도 없다는 공자의 명쾌한 주장이다. 신뢰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다.

공자가 국가 경영의 중요한 항목으로 대답한 세 가지 요소는 기업 경영에서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기업 경영에서 직원들이 경영자를 믿지 못하고, 직원을 믿지 못하고, 주주는 또한 경영자를 믿지 못한다면 그 조직의 존립기반은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신뢰의 부재라는 주장이 있다. 신뢰는 조직의 경쟁력이며 가치인 것이다.

공장이 화재로 소실되고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없어져도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존재한다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경영자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조직원의 신뢰가 있다면 그 조직의 변화와 혁신은 늘 다른 조직의 우위에 있을 수 있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지역주민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가 타이레놀 캡술에 독극물을 주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제조사에게 시카고 지역에 배포된 타이레놀을 회수할 것을 권고했다. 제조사는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배포된 타이레놀 전량(1억달러 상당)을 회수했다. 그 결과 제조사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가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반대로 2002년, 일본의 햄과 소시지 시장 점유율 86%를 자랑하던 일본 제1의 육가공업체 유키지루시(雪印)식품은 수입고기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다가 발각됐다. 그런데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은폐하는데 급급했다. 그 결과 유키지루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팽배해지면서 불과 1개월 만에 도산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스팩이 아무리 좋고 다른 조건이 있더라도 결국 신뢰가 없다면 그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심이 되고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반대로 '그 사람 영 믿음이 안가네',  '믿을 수 없는 사람' 등은 만나보기도 전에 벌써 부정적인 선입견이 자리하므로 인간관계가 좋게 형성될 수가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무신불립'이 관건이다. '무신불립' 자본도 중요하고 자위력도 중요하지만 국가든 기업이든 인간이든 신뢰는 여전히 미래의 경쟁력이자 놓칠 수 없는 가치임에 분명하다.

국가 간의 '無信不立'이 꼭 성사됐으면 쉽다. 그래야 외교도 신뢰라는 잣대로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풍성한 말잔치가 아니기를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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