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마지막으로 그렸다는 '의사 가셰의 초상'은 그가 죽은 7년 후 단돈 58달러에 팔렸지만, 1990년 뉴욕 경매시장에서 무려 8250만달러(당시 우리 돈 약 933억원)에 낙찰되면서 이후 15년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됐다. 그러나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자살할 때까지 그림이라고는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아 줄곧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면도칼로 귀를 잘라 창녀에게 주는 등 괴상한 행동으로 미치광이로 취급받으며 살았다. 그는 지상으로 유배온 고독한 천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시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이미 열다섯 때 완성될 만큼 천재였지만 문단규칙에 따라 열여덟 살에 등단하고, 진달래꽃은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썼다. 그러나 천재면 뭐하랴. 가난은 삶을 힘들게 했고 급기야는 서른두 살 때 아편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박제된 천재 이상(李箱)이 신문에 시 '오감도'를 연재하자 그 난해함에 독자들은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며 빗발치는 항의와 욕설 때문에 중단됐고, 결핵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스물일곱 살에 요절했다. 한국근대서양화의 거목 이중섭은 생전에 그림 그릴 종이조차 살 돈이 없을 만큼 궁핍한 생활고를 겪다가 끝내 영양실조로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과 스물여덟 살에 '천재교수'로 화려하게 등장한 마광수는 끝내 '외설작가'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한 채 자살하고 말았다. 소설 '즐거운 사라'가 나온지 16년이 지나는 동안 마광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외치는 미치광이로,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꼬드기는 변태며 사악한 유혹자로 취급받고 있다. 생전에 마 교수는 '문학은 상상력의 모험이며,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창조적 불복종'이라 정의했는데 이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지금 우리는 마광수의 죽음에 대해 비겁한 위로를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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