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시민리포터

▲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방송이나 신문 뉴스보기가 무서우리만큼 세계도처에서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태풍과 허리케인이 삶을 위협한다. 각종 테러가 일어나고 똑 핵실험과 미사일발사 소식이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어떤 가정이 대한민국에서는 전쟁공포증 때문에 살 수 없다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런데 거기서 슈퍼마켓을 하다가 남편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한국이 불안하다고 한국을 떠났는데 미국에서 더 큰 아픔을 겪은 것이다.

성경은 환란과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장소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 즉 지명을 말한 적이 없다. 안전이란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풍파를 겪어본 사람은 풍파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를 안다. 중병을 앓아본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에 큰 아픔을 겪어본 사람은 안정된 가정생활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안다. 교회생활의 갈등을 겪어본 사람은 행복한 교회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안전지대를 원한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슬픔과 실망의 광풍이, 실패와 환란의 모진 바람이 우리를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풍랑을 어떻게 직면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우리는 파괴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타협주의자도 아니다. 도피주의자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문제 앞에 창조적인 태도를 가진다. 우리는 모순된 삶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낙담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희망을 선포한다. 어두운 현실에서도 세상을 밝은 눈으로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경건한 사람의 삶은 달걀을 삶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음식물은 삶을수록 허물 허물해 진다. 그러나 달걀은 삶을수록 단단해 진다. 문제 속에 집어넣었을 때 보통사람들은 대개 허물허물 풀어지지만, 경건한 사람은 고난의 가마솥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 삶이 더욱 단단해진다.
시편 46편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안전지대가 되어 주신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이 위기에 부딪히고 어려워졌을 때 시편 46편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고 힘을 얻었다. 그때 받은 은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른 곡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하는 찬송이다(찬송가 585장) 독일 사람들은 이 찬송을 국가보다 더 애창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전지대가 되신다는 말씀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모진 환란과 혼란 속에서도 높은 곳에 안전지대를 두고 살았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것이다.

전쟁의 위험과 재난의 위험이 점점 커져가는 이 시대에 생존배낭을 준비해야 한다거나, 주변에 대피할 곳을 미리 찾아 두어야 한다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재난의 때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진정한 안전지대는 내가 있는 그곳이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한 내가 서 있는 그곳이 안전지대가 된다는 말이다.

불안해하지 말자. 초조해하지도 말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곳, 그곳이 진정한 안전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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