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처서가 지나도 불볕은 여전히 뜨겁다. 전에도 이만큼 더웠겠지만 올해는 유독 더하다. 거기다 팔월 날씨가 툭하면 비를 뿌리니 꿉꿉하기 그지없다. 낮에는 무더위에 지치고 밤에는 열대야로 괴롭다. 이렇게 몸이 지쳐 허(虛)할 때 먹는 음식이 보양식이다.

기력을 회복시키는 대표적인 보양식이 장어다.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면역력을 높이고,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이 풍부하여 나쁜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며 정력에도 좋단다. 그러나 장어를 먹고 복숭아를 먹으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다. 장어의 지방산과 복숭아의 유기산이 만나 소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찰떡궁합처럼 보이지만 치킨과 맥주(치맥), 개고기와 마늘도 좋은 만남이 아니다. 토마토와 설탕, 도토리묵과 곶감도 같이 먹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식중독 환자의 85%가 6월과 8월 사이에 발생한다. 음식이 잘 상하는 탓도 있지만 음식궁합이 문제다.

조선 20대 임금 경종의 죽음은 잘못된 음식궁합의 대표적인 사례다. 왕노릇이라고는 겨우 4년 2개월 하다가 독살설에 휘말린 비운의 왕이다. 그 유명한 장희빈의 아들로 돌이 되기 전에 원자가 되고, 3살 때 세자로 책봉된 조선왕조 역사상 최연소 대권주자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7살 때 어머니가 중전에서 빈으로 강등되는 것을 보았고, 14살 때는 사사(賜死)되는 현장에 있었다. 심지어 장희빈이 죽으면서 왕손의 대를 끊어 놓겠다며 아들의 불알을 짓이겨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었다고 야사는 기록하고 있다.

유약하고 병약한 몸으로 재위 중 내내 시름시름 앓다가 수라에 올라온 게장과 생감을 먹고 심한 복통과 설사로 결국 세상을 뜨고 만다. 16세기 약학서 본초강목에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독이 되는 상극음식이라 했다. 게장과 생감을 내도록한 사람이 훗날 영조임금이 되는 연잉군이라는 소문이 재위기간 내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세상만사 좋은 만남과 그렇지 못한 만남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물건에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