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Narcissus)는 미소년이었다. 그를 한 번 본 소녀라면 누구나 반했지만, 정작 나르키소스는 그 누구도 사랑하는 법이 없었다.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부 당한 소녀들이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자신들이 겪은 것과 똑같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괴로움을 나르키소스도 겪게 해 달라고 소원한다. 아프로디테는 나르키소스가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분노해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영원히 자신만 사랑하라는 저주를 내린다.

나르키소스가 물을 마시려고 샘물에 엎드리는 순간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스스로 취해 자기 모습만 쳐다보다가 끝내 죽고 만다. 마음씨 고운 요정들이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잊고 그를 샘가에 묻어줬는데 그 무덤에서 예쁜꽃이 피어났다. 이 꽃을 나르키소스(수선화)라 불렀다. 여기서 생겨난 말이 '나르시시즘'으로 자기애(自己愛)·자기애착·자기도취 등을 뜻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외모나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자기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말한다.

거울은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던 유서 깊은 물건 중의 하나다. 그러나 거울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물이 거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은 마치 고요한 물과 같다고 해 잡념과 허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고 있고, 역사를 거울에 비유해 역사서의 제목에 거울을 뜻하는 '감(鑑)자'를 사용한 책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 관저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거울방' 때문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거울의 방이라고 해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유사 이래 가장 화려하게 지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연상할 필요는 없지만, 유달리 거울에 집착한 것으로 보이는 박 전 대통령의 심리에는 자기 확신의 부족이나 또 하나의 공주병이 가져온 헛헛한 마음을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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