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미술인상 수상한 녹산 구자옥 선생

남농 선생에게 최초로 사사 받은 경남 출신 화가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에도 치열한 작품활동 계속

“1970년 12월 가방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목포로 내려가 남농 허건 선생을 찾았습니다. 수업료를 낼 방법이 없어 3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며 미술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올해 경상남도 미술인상을 수상한 녹산 구자옥 선생(64). 오션백화점 전시실에서 ‘오방색의 의미, 그리고 그림展’을 열고 있는 그는 38년동안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 온 중견작가다.

군 제대 후 먹고살 길을 찾기 위해 미술과 인연을 맺었다는 그는 남농 허건 선생 문하에 들어간 최초의 경상도 제자이기도 하다.

“처음 남농 선생을 찾아 가니 경상도 놈은 절대 제자로 받아 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으셨어요. 보름 후 다시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읍소를 하니 선생께서 “젊은 놈이 패기가 있어 좋다”라며 처음으로 경상도 제자를 받으셨지요.”

남농 선생에게 동양화 공부를 마친 구자옥 선생은 의재 허백련 선생이 설립한 연진회에서 또 다시 2년 동안 문인화 수업을 받았다.

치열한 공부기간이 끝난 뒤에도 생활고는 여전했다. 미술 공부를 위해 꼭 필요한 지필묵을 살 돈이 없어 머리를 깎고 3년 동안 스님노릇을 하기도 했다.

“승려가 됐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은 언제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승려직을 버리고 부산 동아대 앞에서 미술입시 학원을 열어 개인 작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학원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전세금마저 모두 날리며 어려움에 처했던 그가 찾았던 곳이 바로 거제였다.

1979년 거제에서 화실을 열어 개인 작업을 시작했다. 쌀과 연탄이 떨어지지 일쑤였지만 작품 활동에 매진하며 어려움을 견뎌냈다. 먹고 자는 시간외엔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던 치열한 시기였다.

이후 3년에 한 번씩 작품발표를 겸한 전람회 열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경상남도 미술대전에 연이어 입상하며 미술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특히 93년부터 96년까지 4년 연속으로 경상남도 미술대전 특선에 선정됐고, 97년에는 우수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경상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전국 예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위촉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후진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교습소를 차리고 제자를 모아 한국화를 가르쳤다.

또 자비를 들여 전시회를 유치,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고 화실 식구들과 ‘한울회’를 구성해 결식아동 돕기에 나서기도 했다. 언제나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였지만 붓을 들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간에 이상이 생겨 4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간 재생이 안 되고 계속 염증이 생겨 병원에서도 포기를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무리를 하면 몸이 힘들지만 링거를 맞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죠.”

38년 동안의 전업작가 기간동안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병마와 싸워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구자옥 선생은 “오직 몽당 붓 하나로 살아온 전업 작가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가족과 지인의 도움으로 오늘에까지 이른 것 같다”면서 “앞으로 오방색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은 물론 거제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화폭에 가득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