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틀 동안 12간지(十二支)가 상징하는 동물의 날이다.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이 털이 있는 동물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월 초하루가 털이 있는 동물 곧, 유모일(有毛日)이면 그 해는 풍년이 들지만, 무모일(無毛日)이면 흉년으로 점친다. 털 없는 동물로는 용과 뱀이다. 금년 설날의 일진은 을묘(乙卯)로 토끼날이므로 유모일이다. 설을 맞아 상점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문을 열 때에는 반드시 유모일을 잡았는데 털은 솜털처럼 번창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금년 설날은 첫묘일(上卯日)로 토끼날이다. 명사일(命絲日)이라고도 하는데 이날 뽑은 실을 명실(命絲) 또는 톳실(   絲)이라 한다. 이 실로 옷을 지으면 무병장수한다고 해서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이 실을 주머니 끝에 매달아 차고 다녔다. 특히 이 날은 남자가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어야 하고, 여자가 집에 먼저 들어오면 토끼처럼 방정맞게 굴어 재수가 없다고 여겨 여자의 첫 출입을 삼갔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거부할 수 없는 풍습이었다.

이날 동백나무 또는 복숭아나무에 '강묘(剛卯)'라고 써서 차고 다니면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   邪)로 여겼다. 강묘는 본래 한(漢)나라 때 관리들이 모든 재액을 막기 위해 허리에 차고 다니던 단단한 나무망치를 말한다. 후한의 초대 황제인 광무제(光武帝)의 이름이 유수(劉秀)다. 유수가 왕망(王莽)을 힘으로 황제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유(劉)'를 파자하면 묘(卯)·금(金)·도(刀)의 세 글자로 된다. 따라서 유수를 싫어하는 의미로 묘(卯)자를 싫어하게 됐고 나아가 묘일에는 강묘라는 망치를 허리에 차고 나쁜 액운을 물리쳐야 한다는 미신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올해 첫날은 토끼날이었다. 토끼는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간단히 뛰어넘는 습성으로 보아 요즘처럼 어려운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슬기롭게 벗어날 것임을 세시풍습이 예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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