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
  • 거제신문
  • 승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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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참 세월 빠르다. 매해 이맘때면 드는 생각이다. 1월의 속도는 희망과 당혹 같은 것이 섞이면서 그 속도감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새해를 맞으며 세웠던 여러 가지 계획들로 기대를 잔뜩 안고 출발했지만 현실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맞닥뜨리는 난관들로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 달도 채 안 되어 지저분해지는 책상을 보며 지난 연말 마트에서 구해 온 박스를 옆에 두고 버릴 것들을 분류하며 나름 대청소를 했던 기억에 혼자 민망해진다.

우리 집은 본가와 처가 모두 바깥어른들은 돌아가셨다. 홀로 되신 어머니 두 분은 청결하고 주변 정리를 잘 하시는 편이다. 그래도 한 번씩 형제자매들이 모이는 날이면 대청소를 한다. 물론 어머니들은 싫어하신다. 본인들의 삶의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냉장고 속 까만 봉지에 숨어 있는 각종 비축물의 처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오히려 정겹기도 하다.

그런데 장롱 속 깊은 곳에 숨겨 둔 아버지와의 추억어린 물건들, 내가 어릴 때 받았던 상장, 사회생활하면서 중간 중간 해외출장 때마다 사다 드렸던 각종 선물들이 박물관의 수장고처럼 정리돼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 동안 수차례 이사를 하면서도 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아들·딸·며느리·사위 눈 피해가며 잘도 숨겨 옮기셨던 것이다.

이번 설에는 집안에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찾아 디지털 작업을 하자고 했다. 식구들 모일 때 마다 수다도 떨고,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스크린에 띄워두고 오리엔테이션도 하자고 했다. 언젠가 어머니 돌아가시면 장례에 찾아주신 분들에게 사진으로 기억할 수도 있게 하자고 했다. 무엇보다도 앨범으로 정리가 잘 안 되는 사진들을 가상공간에 옮겨 공유도 하고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다.

대학에서 조교를 할 때다. 새로 부임하신 젊은 여자교수님이 있었다. 검고 짧은 상의와 역시 검고 밑단이 약간 넓은 바지에 통굽의 검은 구두. 그 교수님은 거의 매일 같은 패션이었다. 메이커업과 헤어스타일도 한결 같았다. 하지만 단벌의 초췌함 같은 건 없었다. 늘 단정하고 우아했다. 그 교수님이 미니멀리스트인 건 나중에 알게 됐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라고 하는데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기록하거나 남겨야 될 게 많아질수록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도 늘어나는 것 같다. 이를 실천하고 생활양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미니멀리스트인 셈인데, 그 교수님 같은 사람들이 요즘 많아지고 있다.

당장 입는 것만 해도 자신의 신체적 핸디캡을 잘 보완해 주면서 매력적이기도 한 스타일을 찾아 몇 벌 장만해 놓으면, 일단 아침마다 고르는 고민에서 해방이 되고 자기만의 개성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오래 전부터 미니멀리즘의 신봉자가 많은 편이다.   

미니멀리즘 운동은 2차 세계대전 후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운동의 하나다. 1960년대부터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며 '미니멀리즘'이란 용어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미니멀(minimal)'은 극소화·최소화로 해석된다.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회화와 조각 같은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대상의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뼈대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작품이 주를 이루었는데, 조각가이자 미술이론가이기도 한 도널드 주드가 대표적이다.

음악에서는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필립 글래스가 대표주자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박자에 반복과 조화를 강조했다.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소재와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는데,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리차드 풀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니멀리즘은 이 밖에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만을 주장하는 금욕주의 철학, 허례허식을 없애고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각종 의식과 신앙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동안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가 젊은층에 인기가 있었다. '있어 보이다+ability'의 조합으로, 있어 보이게 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자기 연출방식을 일컫는다. 지극히 물질만능과 대량생산 선호의 경제관념이 깔려 있는 용어이다.

거기에 반해 미니멀리즘은 '버리는 행복'을 통해 최소의 소유를 주장한다. 물질보다 가치를 바라보자고 한다. 책상이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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