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 보며
뒤 돌아 보며
  • 이용민 칼럼위원
  • 승인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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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이 칼럼은 2014년 4월28일, 독자 여러분들께 첫 인사를 드렸다. 칼럼의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었다.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분향소에 쓰일 음악을 선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에 대한 단상을 첫 칼럼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칼럼은 매주 서툰 문장으로 곡예운전을 하며 120편을 넘어섰다. 세월로 따져 봐도 2년 반을 훌쩍 넘어 섰다. 그런데 아직도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고 있다. 물리적 인양만 안 된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도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주장들이 제기되고 소설 같은 얘기들이 난무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국가권력은 이 사건의 중심으로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 왔다. 그러는 사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류의 이야기들이 시민들 사이에 더 깊숙이 퍼져 나갔고 결국 이 일은 언제나처럼 은근슬쩍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시작된 정국의 파행은 급기야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진행되고 말았다. 탄핵 소추의 이유 중에는 이른바 '세월호 7시간'도 적시됐다. 하지만 국회의 국정조사장에서 농단의 주역들은 온갖 이유들을 들어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동행명령도 무력화되기 일쑤다. 그나마 출석한 증인들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거짓을 정당화하기 바쁘다.

국민들은 이런 답답한 장면들을 반복해 목도하며 흉통이 생길 지경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게 아니지 않은가.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대국적인 자기반성은 그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자기방어를 위한 단단한 논리는 이미 부끄러움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우리 지도층들의 이런 믿을 수 없는 뻔뻔함을 매일 반복해 봐야 하고, 청와대나 기무사 같은 국가 기관이 주도적으로 나서 거짓을 기획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일들이 일상화되면서 이 국가가 국민인 우리를 정말 지켜줄 최소한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아니, 이미 국가기관과 거기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국민을 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이 움켜쥐고 있는 알랑한 기득권과 그들의 의무를 바꿔치기한 것은 아닌지, 절망은 분노를 낳고 있다.

대개 12월은 문화예술계로선 일종의 특수를 누리는 기간이다. 하지만 올 연말은 글렀다. 나만 해도 12월 초에 이미 올 농사를 마쳤다. 덕분에 다른 곳에서 하는 이벤트를 살펴보며 구경거리를 찾고 있지만 이미 '문화빙하기'가 실감나는 추운 계절이 돼 있다.

박근혜-최순실 극장으로 모든 이목이 집중된 2016년 12월은 그 어떤 이벤트나 엔테테인먼트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문화 멸종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 어느 정부보다도 더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척 했고 심지어 국정 슬로건이 문화융성이며, 융복합 문화콘텐츠가 미래의 먹거리라고 외쳤던 그들이 온갖 방법으로 여기저기서 예산을 도적질하고 자신들의 먹거리로 만들어 버린 이 어마어마한 융복합적인 공적 농단은 분명히 우리 문화예술의 생태계에 치명타를 줬고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운 데미지를 입혔음이 명확하다.

12월은 입시생들의 수시모집 결과가 마무리되고 정시 전형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며 또 억장이 무너진다. 저렇게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또 패퇴한 젊은이들은 오랜 동안 그 상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고, 노력의 결과로 빛나는 명문대 입학의 영광을 안은 젊은이들도 요즘 같으면, 불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깊은 수렁 속으로, 마치 세월호 속에 갇힌 아이들처럼 무기력하게 가라앉을 것이 불을 보듯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국정 농단의 주역들이 언젠가 우리 시내에 자랑스럽게 나붙었던 당선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명문대 갔다고 학교·학원·마을 심지어 부모가 속한 계모임에서조차 온 시내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그 자랑스러운 플랜카드의 주인공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 이대로면 지금 저 젊은이들의 미래도 하나도 나아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이 시대 일그러진 엘리트의 전형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우병우만일까. 나는, 우리는 얼마나 온전하게 살아 왔을까. 자문해 보고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진영이나 세대 간의 논리가 개입될 이유도 없다.

똑똑한 우병우에게 돈 많은 집 여식을 선보여 장가보내는 것보다, "공부한다고 욕 봤는데 이제 음악도 좀 듣고, 영화도 보고, 사람같이 살아 봐야지?"라고 권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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