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은 베다니에 들리셨다.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달동네를 말한다. 이 베다니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와 그 누이 마르다·마리아가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벌였다.

마르다는 일을 했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는 등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식사 시중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나사로는 예수님 옆에 앉아 있었다. 나사로는 예수님 옆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섬김이요 봉사요 일이었다.

사람들은 나사로를 보면서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마르다는 열심히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님 옆에 앉아 있고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하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이때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 곳으로 마리아가 들어온다. 마리아의 손에는 옥합이 들려 있다. 마리아는 조심조심 예수님 곁으로 다가간다.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가만히 옥합을 기울여 예수님 발에 붓는다. 옥합에서는 비싼 향유가 흘러나왔다. 마리아는 자기 머리털로써 예수님의 발을 닦기 시작한다. 온 집에는 향유냄새가 가득하게 됐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계산에 밝았던 가룟 유다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이 향유를 왜 발에다 부어 허비하느냐고 마리아를 책망했다. 데나리온은 당시 장정들의 하루 품삯이었다. 300데나리온이면 일 년 365일 중에 주일을 빼고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해서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돈이다. 마리아는 그 돈에 해당하는 향유를 단 번에 예수님 발에다 부어 드렸던 것이다.

마리아는 어떻게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 부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부자가 아니었다. 좋은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 옥합을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리아는 베다니 사람이었다. 달동네 사람이다. 그의 집이 얼마나 가난했으면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하면서도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지도 못했다. 잔치가 벌어진 집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할만한 변변한 방 한 칸도 없이 살았던 마리아, 그에게 있어서 향유 옥합은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안 먹고 안 입고 한푼 두푼 모아온 재산이다.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쓰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옥합을 어떻게 예수님 발에다 부어드릴 수 있었는가?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다. 오라버니를 살려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였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 삼남매를 사랑하셨다. 그 사랑에 대한 감사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를 잊지 않고 그들 집을 찾아와 주셨다. 비천하고 가난한 자기들을 잊지 않고 찾아오시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였다.

감사는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것이다. 감사는 나를 깨뜨리는 것이다. 나를 깨뜨리고 남편에게 감사하자. 나를 깨뜨리고 아내에게 감사하자. 나를 깨뜨리고 주님 앞에 감사하자. 감사가 있을 때 삶의 향기가 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부어드릴 때 온 집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게 됐다. 감사할 때 우리 삶은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감사가 없으면 향기가 없다. 아니 감사가 없으면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감사하면 그곳에는 사랑의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 인생을 향유 냄새 가득한 향기로운 삶으로 다듬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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