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난초그림(墨蘭)은 추사 김정희가 극찬할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당시 권세가나 재력가들이 서로 앞 다투어 대원군의 난초를 소장하려고 줄을 서자, 대원군은 사랑방에 난초를 잘 그리는 화가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그림을 베끼게 한 다음 이름과 낙관만 찍어 비싼 값으로 팔았다. 그런 탓으로 지금 유통되고 있는 대원군의 난초그림은 절반 이상이 가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송나라 때 서화가 미불(米   ·1051~1107)은 문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남의 그림을 보고 그대로 베끼는 재주는 더 탁월했다. 남의 명화를 빌려다가 그림을 베낀 후 진짜그림은 되돌려주지 않고 모 작품을 주인에게 돌려주어도 정작 그 그림의 주인은 자기가 가짜그림을 받았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미술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위조화가라면 반 메레헨을 꼽는다.

1945년 '미술평론가들이 베르메르의 진품으로 판정한 초기 작품들은 모두 내가 그린 위작'이라는 폭탄선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메레헨이 2차 대전 중 가짜 베르메르의 그림을 나치에 팔았는데 전쟁 후 문화재를 유출한 매국노로 재판정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 그림이 가짜라고 증명해야 중형을 면할 수 있었던 탓에 진실을 폭로했고, 그 주장이 맞는지 감옥에서 베르메르의 가짜그림을 그려 보인 후에야 중형을 면하게 된다.

1979년 10·26사태 후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집에서 압류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고 하자 정작 작가는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내 그림 아니라고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내 그림이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붓을 꺾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화백의 그림 13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모두 위작이라고 했는데 작가는 "내가 내 그림을 모르겠느냐"며 진품이라고 했다. 과학적 검증을 믿어야할지, 작가의 말을 믿어야할지 헷갈린다. 진실게임은 언제나 미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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