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창일 국장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3.0%에서 2.8%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과 달리 민간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2.4~2.6%에 불과할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둔화는 대한민국이라도 예외는 아닌 상황이다.

최근 들어 주요언론들은 앞다퉈 조선업 위기론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조선불황에 따라 거제와 울산 등 조선산업 도시의 현재 상황을 보도하느라 바쁘다. 인구 감소, 자영업 위기,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을 거론하며 마치 거제시가 사람이 살기 힘든 '유령도시'가 된 것처럼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은행권 대출이 차단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거제지역 경제는 정말 최악의 상황일까. 거제시는 지역 전통시장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25% 감소했고, 대형매장 매출액도 15~2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이후 인구증가폭도 둔화됐다. 1월 거제시 전입인구는 615명이었지만 2월에는 203명, 3월에는 248명으로 다소 줄었다. 외국인 수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조선업 경기불황으로 신규 수주 '제로'로 일거리가 사라진 외국 선주사 주재원과 가족들이 짐을 싸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3월말 현재 거제시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모두 1만4704명이다. 이는 지난 2월에 비해 136명 줄어든 것이다.

지난달 20일 열린 거제·통영·고성 고용상황반 회의에서 나온 거제지역 조선업 구조조정 전망에 대한 자료는 다소 충격적이다. 올 3월말 현재 대우조선해양 4만7631명, 삼성중공업 4만1502명 등 총 8만9133명이 양대 조선소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수주가뭄이 지속될 경우 올 연말까지 지역 조선근로자의 수가 6만7102명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연 내 2만2000여명의 대규모 실직자가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침체로 지역경제가 예년보다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소위 잘 먹고 잘 살던 거제시민들이 모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는 단순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지갑을 닫는 이들이 많아졌을 뿐이다. 하지만 조선사의 본격적인 인력감축이 시행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거제지역의 조선업이 미치는 경제적 파급력을 감안하면 지역경제가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문제는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에 있다. 현재 정부의 구조조정은 자산매각과 인력감축, 원가절감 등 이른바 '경영정상화'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십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이른바 '숫자'에 집착하다 부실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에만 집착하다 산업 경쟁구도와 구조의 변화를 등한시 해 결국 더 큰 부실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비용절감과 자산매각으로 대표되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해당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다.

현재의 상황으로만 판단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는 우려가 당연한 듯 들린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비용 절감을 위한 획일적이고 과도한 인력 감축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70년대까지 세계 조선 시장 1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정부 주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60여개였던 조선사를 20여개로 줄였다. 생산 능력도 절반 이하로 감축했다. 결국 50%를 넘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당시 과감한 설비 확대에 나섰던 한국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일본은 중국에게도 밀리며 세계 3위권으로 추락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하지만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바뀌면서 혁신이 더뎌진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조선업이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담당하며 이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귓가를 맴도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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