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꾸며가야 할지 고심이 많다. 과연 "100세를 살 수 있을까?"하던 의구심이 "100세까지 뭘 하며 살지?"라는 매우 현실성 있는 문제로 다가오는 건 이미 우리 주변에 90세 이상의 초고령자들이 즐비해져 가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100세를 산다는 게 이렇듯 가까운 숫자로 다가왔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해도 하늘의 선택을 받은 몇몇 노인들의 이야기로 여겨졌었다.

의학의 발달이 이렇게 수명을 늘여놓고 있지만 이런 고령화가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잘 산 인생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 같은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야 할 것이란 소망을 가져 본다.

연초 영화 '동주'가 의미 있는 반응을 보이면서 근현대사를 수놓은 많은 예술인들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몇 살이나 됐을까. 공교롭게도 내가 궁금해 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100살에 수렴돼 있었다.

창원에선 몇 해 전 아동문학가 이원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향의 봄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그의 예술적 성과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재작년엔 조각가 김종영의 10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해 창원 출신의 근대 예술인들을 다시금 재조명하며 예술의 도시로서 이미지를 제고하기 시작했다. 

'배우는 배우다' '러시안 소설'의 감독이자 영화 '동주'의 시나리오와 제작을 맡았던 신연식 감독이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예술인 10명의 삶을 영화화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윤동주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고뇌와 시 세계로 오늘의 부끄러움을 투영시킨 바 있는 영화 '동주'는 사실상 이 연작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셈이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들은 1930~1940년대 최고의 히트곡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등을 부른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을 다룬다고 한다. 올해가 이난영 탄생 100주년이고 내년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다.

또 다른 인물로는 일제 강점기 풍자와 해학으로 크게 인기를 끈 만담가이자 연극인 신불출이 있다. 시대의 불의에 풍자로 저항하다 일제로부터 갖은 고초를 겪고 해방 이후 월북해 남한 역사에선 사라진 그의 삶을 영화로 추적할 모양이다.

그밖에도 시인 백석과 무용가 최승희 등이 '아티스트 프로젝트'의 대열에 합류해 시대를 뛰어 넘어 관객과 대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니 기대가 크다.

예술인을 조명하는 방식이 영화만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속성이 100년 이상의 간극을 이어주는데 유용한 수단임은 부인 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인들의 이런 움직임이 반갑고 고맙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면 그 동안 우리가 반복적으로 해 왔던 이들 예술인에 대한 친일 전력이나 이념적 검증 등으로 시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해 본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한 발짝도 더 내 딛지 못하는 이런 문제들도 이번엔 제대로 해결하고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 관련 정보에 무관심하다가도 무슨 문제만 벌어지면 어디서 그런 확신들이 드는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적어도 평균 이상의 삶을 살아온 분들의 인생에 주저 없이 던져대는 돌팔매질을 이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세련된 방법으로 애정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관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동주'는 순제작비 5억원 정도의 저예산 영화라고 한다. 영화든 뭐든 이런 작업들엔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근현대 예술인들의 기념사업엔 그래서 지자체의 관심도 중요하리라 여겨진다. 그 동안 소홀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역사적, 산업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사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 이것만한 장치는 없다.

동랑 유치진은 그의 후손들이 대한민국 대중예술의 산실인 서울예술대학을 꾸려가며 지금도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살아 있다면 110살이 넘었다. 동생인 청마 유치환도 친일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내년이면 110살을 맞는다. 뚝하면 빨갱이 시비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작곡가 윤이상도 내년이면 탄생 100주년이다.

영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날아온 판촉물의 표지엔 2017년과 2018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작곡가 아이넴과 번스타인에 앞서 윤이상의 사진이 인쇄돼 있다. 우리도 이제 예술가의 삶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어야 한다. 존중의 문화가 우리의 100세 시대를 더욱 풍요롭게 인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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