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사람이 거제에 오면 맨 먼저 하는 소리가 "거제도가 왜 이리 춥노?" 하며 날씨타령이다. 꽃 피는 봄이라고 얇은 옷을 입고 왔다가는 영락없이 추위에 떨다 가는 것이 음력 이월의 거제날씨다. 실제기온은 서울보다 높지만 느끼는 체감은 여간 춥지 않다. 그건 바람 탓이다.

음력 이월은 겨울과 봄이 교차되는 시기로 따뜻한 저기압과 차가운 고기압의 확장과 소멸이 불규칙적이어서 바람이 잦다. 특히 내륙과 다르게 섬지방에서는 어로가 생업이었던 탓에 바람에 예민한 반응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바람을 관장하는 영등할미(風神)에게 제를 지내는데 이를 '할만네'라 한다.

할만네는 대동굿이나 동제가 아닌 각 가정의 안택고사다. 영동할미는 일 년에 한 번 이월 초하룻날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때 딸 또는 며느리를 데리고 온다. 이날 바람이 불면 딸, 비가 오면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고 여긴다.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을 일으켜 딸의 치마가 팔랑거려 예쁘게 보이도록 하고, 며느리와 함께 올 때는 비를 내려 그 치마가 얼룩져 밉게 보이도록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월 초하루가 영등할미날이다.

각 지방마다 할만네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거제나 통영에서는 영등할미가 세 사람이어서 10일에는 상등할미가, 15일에는 이등할미가, 20일에는 하등할미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때마다 각 가정에서는 정성껏 차린 저녁상으로 할미를 보낸다. 하등할미 오를 때 비가 오면 좋은 징조다. 이제부터 농사가 시작될 텐데 이 무렵에 비가 와야 땅이 축축해져서 논밭갈이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영등신앙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이월의 기상상태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경외와 숭배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한 인간의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가 역설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마시한테 비나이다. 일 년 내내 집에 밸 탈 없거로 돌바주시고 아아들도 별 탈 없거로 살펴주이소" 하고 영등할미에게 손을 비비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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