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새누리당 공천과정이 가관이다.

각종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투명해져서인지 요즘은 유력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다. 공천관리위원회든 최고위원회든 논의되는 과정에서 내뱉는 발언들이 가감없이 중계되고 있다. 그냥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양반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위임할 수 있을지 암만 생각해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이력을 보면 모두 훌륭한 교육을 받고 명석한 두뇌를 지녔을 법한데 쏟아내는 표현들은 저급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국민 입장에선 정말 의지하고 기댈 데가 없어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기야 이른바 '옥새파동'으로 청와대를 대변하는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말았다. 전체 선거판을 위해 형식상 봉합의 형태는 갖췄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어떤 형국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옥새는 사실상 청와대를 상징하는 권한의 결정체인데 이번엔 당대표의 직인이 옥새에 비유되고 있다. 그만큼 권한을 부리기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일 것이다.

옥새(玉璽)란 원래 옥으로 만든 도장을 일컫는데 금으로 제작한 금보(金寶) 혹은 금인(金印)도 통칭 옥새라 부른다. 당나라 때부터 '새'의 발음이 죽을 '사'와 비슷하다고 하여 보(寶)라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은 중국으로부터 옥새를 받아야 비로소 조선국왕으로 정식 책봉이 됐다. 따라서 옥새는 조선 왕의 정통성과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왕이 사용하는 도장은 실무용과 의례용으로 종류가 다양하나 옥새는 왕의 도장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대한 도장이라는 의미의 대보(大寶)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인문(印文)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라는 한문이었다. 후계 왕은 즉위할 때, 선왕으로부터 유언장과 함께 옥새를 받음으로써 후계자로 공인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에 외교문서를 보낼 때도 이 옥새가 사용됐으며, 주요 통치의례에서도 어김없이 옥새가 이용됐다. 옥새는 상서원(尙瑞院)에서 도승지의 책임 아래 관리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옥새의 개념이 폐지되고 새로운 국가의 상징으로 국새(國璽)제도가 마련돼 1949년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가 제작됐고 1970년 인문을 한글 전서체인 '대한민국'으로 고쳤다. 옥새의 수난은 곧 나라의 수난을 뜻하기도 했는데,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은 인조에게 항복의 증표로 명나라로부터 받은 옥새를 청나라에 반납하고 청나라가 만든 새 옥새를 받들도록 하는 수모를 안겨 주기도 했다.

옥새하곤 좀 다른 얘기지만 예술가들에겐 자기 작품임을 나타내는 낙관이나 사인이 있다.

미술가나 조각가에겐 일상적인 작업이고 작곡가들도 자기 작품에 창작연도나 사인을 적어 놓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일종의 보증인 셈인데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묘사한 '피에타'상을 제외하곤 자기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연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청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가 4년간의 고된 작업 막바지에 드디어 사인을 하고 밖을 나와 보니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 그 위를 나는 새들이 경이로운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신은 이렇게 위대한 자연을 창조해 놓고도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작품임을 나타내는 흔적을 남겨두지 않았는데 나는 기껏 천장에 벽화 하나 그려 놓고 사인을 하고 교만에 빠져 있었구나"라고 자책했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그 어느 작품에도 사인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세계 유명인들 사인에 랭킹을 매겨 소개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위 안에 든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인으로, 미키마우스를 그려 넣은 월트 디즈니와 음계표시를 암시하는 듯한  모차르트의 사인 그리고 뾰쪽뾰쪽 돌출돼 불편해 보였던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사인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도장 파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없다. 간혹 찾게 되더라도 기계를 이용해 천편일률적인 도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개성이 줄어든 도장은 더 이상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사인이 더 각광 받는 세상이 된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뜻하지 않은 김무성 대표의 '옥새파동'으로 인해 책임과 권한의 엄중함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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