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부르봉(Bourbon) 절대왕정의 황금시대를 이끌며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는 여든 가까이 살았다. 당시로서는 꽤 장수한 셈인데 다섯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즉위했기 때문에 재위기간도 엄청나게 길다. 물론 어린 시절엔 모후인 안 도트리슈의 섭정과 재상 J.마자랭의 밀착 보필을 받았다.

재임 초기엔 나이가 어려 왕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어려웠지만 에스파냐와의 전쟁으로 나라살림이 피폐해져 민심이 극도로 이반돼 있었다. 급기야 프롱드의 난이 일어나 위기를 맞자 모후와 함께 파리를 떠나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이 고초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돼 나중에 왕궁을 파리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옮겼는데 그곳이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 베르사유궁전이다. 청년기에 접어들 때쯤 독단을 일삼으며 왕권을 농락했던 재상 마자랭이 죽자 재상제도를 폐지하고 본격적인 친정체계를 갖추게 된다.

J.B.콜베르라는 충신을 발탁해 중상주의 정책에 의해 산업을 육성하고 식민지 개발을 추진했다. 그 결과 플랑드르전쟁·네덜란드전쟁·아우구스부르크동맹전쟁·에스파냐계승전쟁 등으로 유럽을 완전히 장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짐은 곧 국가다"라며 절대군주의 위용을 과시했던 루이 14세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다. 코르네유·라신·몰리에르 등의 거장들에게 기회를 줘 고전문학의 융성을 이끌었다. 이들의 작업은 오늘날 프랑스어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 오페라의 창시자인 륄리나 천재적인 건반주자 프랑수아 쿠프랭 같은 음악가를 중용해 베르사유궁전에 1년 내내 음악소리가 끊이질 않게 했다.

본인이 직접 발레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런 활동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재상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뺏긴 루이 14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였을 것이다. 그 시대 그림에 보면 루이 14세가 여장을 한 채 발레슈즈를 신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발레를 통한 자기표현은 나이가 들어서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개봉한 '왕의 춤'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파리넬리'를 통해 카스토라토의 생을 수준 높은 음악과 영상으로 유려하게 표현해 낸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또 다른 수작이다. 이 영화에서는 깐느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베누아 마지멜이 춤추는 루이 14세로 열연한다.

영화평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태양신 아폴론을 지향했던 루이 14세에게 예술은 자기 탐닉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북한식 걸그룹 '모란봉 악단'을 창단했다. 단원들은 뛰어난 미모에 그 동안 금기시되던 짧은 치마를 입은 채 공연할 뿐만 아니라 팝송같은 파격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선 이것이 북한의 변화로 읽히기도 했다. 나는 10년 전 평양을 방문해 고려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 공식행사를 제외하곤 바깥출입이 제한돼 객실에서 TV시청 밖에 할 게 없었다.

그런데 채널이 하나 밖에 없고 그것도 몇 개의 프로그램이 랜덤으로 계속 돌았는데, 북한 사람들 참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우리 드라마나 영화 DVD가 단속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에 암거래되는 것도 이런 빈약한 오락거리 탓이 아닌가 싶다.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일은 영화광이었다. 아들 김정은도 어릴 때 스위스에서 공부한 탓인지 음악이나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다만 이런 기호들을 인민들과 즐겨 나눌 생각들은 없는 것 같다. 마치 중세시대에 제한된 신분의 사람들만 문화의 주체가 되고 향유할 수 있었던 폐쇄성을 보는 것 같다. 거기다 예술단이 다른 목적으로 포장돼 활동한다면 세상 그 누구도 마음으로 그 공연에 박수쳐 줄 사람은 없다.

이번 중국에서의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는 이유야 어떻든 중국의 '북한포기론'으로까지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양강의 반열에 올라선 중국이 북한을 방패로 외교를 펼치기에는 그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루이 14세도 다양한 평가를 받는 군주다. 그가 가까이 두고 애정을 쏟던 신하나 예술가들과의 관계변화를 보면 군주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든 단순한 변심이든, 인간적 고뇌가 왜 없었겠는가 싶은 대목들이 많다.

'왕의 춤'이 루이 14세를 스스로 강화하고 위로해 주는 '일생의 과제'였다면 김정은도 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북에는 세련된 '춤'이 필요할 때다. 그들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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