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 윤성원 거제불교거사림 2기 학생회장
시작과 끝이 어디란 말인가. 부처님은 생각하고 있는 곳이 시작이고 생각이 없는 것이 끝이라 하신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은퇴일 것이다. 이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타적인 생각을 의미 할 것이다. 아무런 대가나 욕심을 바라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행복한 은퇴일 것이다. 부처님은 은퇴에서 나오는 성냄을 버리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자애를 개발하라고 하시며 자애의 이익을 생각하시라 하신다.

자애를 많이 생각한 사람은 먼저 안색이 밝아지고 편안해진다. 또 자애를 많이 닦은 사람은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하고 편안하게 보일 것이다.

은퇴를 끝이라 생각하면 편안하게 잠들지 못할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반대로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자애를 개발하면 편안하게 잠이 올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자애심이 많은 사람은 항상 남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회 사람들뿐만 아니라 천신이나 동물 등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도 좋아한다. 자애심이 많은 스님은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동물들이 달아나지 않고 가까이 마음으로 이야기 했다고 한다.

더 깊은 뜻으로 나아가면 자애의 개발을 통해 자애선정에 들 수 있고, 그 선정을 바탕으로 최상의 지혜를 개발해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다. 비록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러도 우리가 원한다면 매우 고귀하고 행복이 가득한 세상인 색계에 태어 날 것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며 내 마음의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왜 나에게만 은퇴가 빨리 올까?' '왜 사람이 나한테 저러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봄으로써 나의 입장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면 벌써 내 마음이 시작의 길로 걸어가는 행복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주관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것에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의 입장에서 헤아리게 되면 대화의 물꼬가 트일 여지가 있지만 자기 입장만 고수하면 세상의 소리는 단절 될 뿐이다. 슬픈 결점보다 좋은 장점을 생각하며 표면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일에 혼자서 평가 하는 것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일이다. 이는 장님이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길쭉하게 생겼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부처님 법에도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부처님처럼 모든 것에 통달하고 두루 볼 수 있는 존재들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아무나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마음의 각도를 조금 바꿔 사회를 보게 되면 직장 생활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좋은 점들을 보게 돼 흔들리는 마음을 중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은퇴의 시점에서 자애가 남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연민은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애와 연민을 합쳐서 자비(慈悲)라 한다.

보이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면 우리도 무척 괴로울 것이고 감정을 낸 것으로 인해 큰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또한 태어난 모든 존재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연민의 대상이 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처럼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이다. 남이 괴로워한다고 같이 괴로워 할 이유는 없다. 생각이 다르다고 사회에 화를 내기보다는 자애로써 대응하면 사회는 악업을 짓지만 나는 행복한 경지에서 은퇴가 아닌 광채의 빛에서 선업을 짓는 것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