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요즘처럼 겨울의 초입에 접어드는 늦가을이면 이브 몽땅의 '고엽'이나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같은 서정성 짙은 곡들이 계절에 맞춰 꺼내어 입는 옷장 속 두꺼운 옷처럼 딱 어울리는 음악일 것이다. 그래서 샹송이 마치 이 계절의 지존이 된 게 아닐까.

그런데 에디트 피아프의 그 독특한 비브라토가 참혹한 절규로 바뀐 역대급 테러가 세계인의 낭만을 품은 파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IS의 이 경악할 동시다발 테러는 평소 정치적, 문화적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들까지 한 목소리로 비난과 응징의 결의를 다지게 만들고 있다.

급기야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도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급격히 진척되고 있는 걸 보면 지구촌 어디에서도 이런 테러로부터의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 된 것 같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간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거나 불가항력적인 전염병 또는 자연재해로 인해 인류사적인 위기를 겪은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인류는 그 때마다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곤 했었다.

이번 테러에 세계인들이 더욱 분노해 하는 것은 테러가 자행된 장소들이 공연장이나 축구장 같은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공간에서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다음 주 내가 관여하고 있는 악단이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파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있는데 당장 연주가 예정대로 진행될지, 설령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연주자들이 아무런 동요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을지 머리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테러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처럼 조그마한 연관성이라도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매우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건 사실이다. 일단 이런 작은 불편함부터 극도의 불안감까지를 테러리스트들이 적대시하는 모든 곳에 조성해 보겠다는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파리테러만 해도 2012년 11월13일 프랑스가 IS와 대적 중인 '시리아 국가평의회'를 시리아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테러가 공교롭게도 3년 전 그날과 일자가 겹치기 때문인데, 더군다나 이번 테러일이 13일의 금요일이라서 그 공포감은 더 증폭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이런 사건을 통해 일상 속에 있는 사건이나 장소, 숫자를 모두 암호화하는 두려움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13명 중 13번째 손님인 유다가 예수를 팔아 넘겼다거나, 비슷한 이야기로 노르웨이의 신화에 12명의 신이 참석한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13번째 불청객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악의 신 '로키'였다던가 하는 '13 혐오증'은 희대의 살인마 제이슨을 중심으로 하는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에서 전 세계로 일반화되었다.

1980년부터 만들어진 이 호러물이 11편까지 속편을 만들어 낸 걸 보면 이 공포의 숫자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상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작곡가 쇤베르크는 1874년 9월13일에 태어나 1951년 7월13일에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좀 유난스런 '13공포증 환자'였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쇤베르크가 작곡한 곡의 악보에는 13페이지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그 페이지를 '12b'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그의 미완성 오페라 '모세와 아론 Moses and Aron'도 원제는 'Moses and Aaron'이었는데 누군가가 제목이 13글자라고 말하자 아론Arron에서 'a'자 하나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70이 넘자 자신이 76세(7+6=13)를 결코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말대로 그는 1951년 76세의 나이로 그것도 13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쇤베르크는 '바르샤바의 생존자'라는 칸타타를 남겼는데 오스트리아인으로 나치의 횡포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살았던 쇤베르크 자신의 입장이 반영돼 있으면서 나치의 만행 속에 죽어간 유대인들에 대한 애도를 나레이션 기법으로 풀어가고 있는 20세기 음악의 수작이다.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린다. 그 아름답던 바르샤바는 과거 2차 대전의 포화 속에 85퍼센트 이상 구시가가 소실되었고 인구의 절반인 60만명 이상이 죽어 갔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 그 곳은 완벽히 복원됐고 이례적으로 복원된 문화유산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하늘이 무너져 버리고 땅이 꺼져 버린다 해도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두려울 것 없으리."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슬프고 짙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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