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규홍 취재기자
거제 모 조선소에서 20년간 일한 A씨는 최근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요즘 불고 있는 모 조선소 상시 희망퇴직 칼바람을 자신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미팅을 마치고 업무를 시작할 때쯤이었다. A씨에게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내용은 사내 감사팀과의 면담이 잡혔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A씨는 그동안 충실하게 회사 일을 해왔으니 큰 문제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감사팀과의 면담자리. 감사팀 직원은 묻는다.

"A씨, 당신이 그동안 했던 일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말하기 전에 먼저 밝히시죠. 자술서 써서 제출하십시오."

청천벽력이었다. 20년 동안 인생 황금기를 회사에 바친 대가가 감사실 취조였다. 이어진 내용은 그동안 노력을 치하하기는커녕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인권 유린적 질문이 뒤를 이었다.

A씨는 인생 전체의 회의가 들었다. 회사가 어려우니 사퇴를 권유한다면 받아 들일만 하지만 없는 잘못을 캐내서 강제퇴직 시키려는 회사의 작태는 그의 삶과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줬다.

A씨는 끝까지 가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0년의 노력이 불명예 퇴직이라는 오명에 무너지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막고 싶었다. 이는 모 조선소에서 지난해에 있었던 모 부장 블로그 폭로 논란이 아니라 올해 다시 불거지고 있는 내용이다.

지난 9월 이 조선소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상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이후 전방위적 감사가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내·외부의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고 있다.

지난달 업계에 따르면 이 조선소는 사무직과 생산직 모두를 대상으로 지난 1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구체적인 인원 감축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000명 정도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원, 고졸 입사자, 55세 이상 고령자 등이 대상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희망퇴직을 원하는 직원은 직급과 연차에 따라 상여금을 기준으로 특별위로금이 지급된다.

차장과 부장은 최대 2억원, 과장 1억6000만원, 대리 1억3000만원, 사원 1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감사 지적을 받으면 특별위로금은 없기 때문에 대대적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조선소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는 지난달 "임금협상 이후 다시 추진되는 희망퇴직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확인작업을 진행하겠다"며 "사측이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발견될 경우 이를 절대 간과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조선소 관계자는 희망퇴직에 대해서는 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직원 대상 감사가 다시 이뤄지는 것은 과연 이 조선소의 윤리경영에 부합할까.

이 조선소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라는 경영이념 아래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윤리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도덕의 발현이다. 노동자 권익을 보장하는 노조도 인정하지 않으며 전근대적 감사를 자행하고 있는 이 조선소의 현실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윤리'가 아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사회,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조선소를 있게 한 근본은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다. 그들에게 작은 손수건 하나 건네지 못할망정 내부 감사를 통한 인격 모독의 칼부림은 양두구육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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