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국내에서 68억원에 달하는 분양가의 아파트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일 모델하우스를 공개하고 분양을 시작한 부산 해운대의 L모 아파트의 이야기다. 이 아파트엔 전용면적 244㎡형의 펜트하우스가 두가지 타입으로 총 6가구가 있는데 위치에 따라 45억에서 68억까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분양가도 놀랍지만 같은 층수와 평형임에도 불구하고 20억 넘게 차이가 나는 분양가가 사실 더 놀랍고 그 이유가 궁금하다.

업체의 설명에 의하면 "해운대 백사장과 맞닿아 있어 바다와 해변 조망을 갖춘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가 분양가에 반영됐다"고 한다.

예전에도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아파트의 특정 층수나 방향에 대한 선호나 약간의 프리미엄 같은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 해운대 아파트의 경우 조망권이라는 심미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변환 적용하게 되는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경우에도 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의 아파트는 일반적인 입지의 아파트와는 몸값이 다르다. 이른바 '블루 조망권'으로 불리는 프리미엄이 엄연히 존재한지 꽤 됐다. 

이렇게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곳 뿐 아니라, 녹색자연인 숲을 조망할 수 있는 '그린 조망권'도 각광받고 있으니 가치의 기준이 자연중심으로 많이 옮겨가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집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선 재산증식의 수단이나 부의 상징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원래 인간이 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도모해 주고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소통하고 성장해가는 작은 역사의 공간이다.

당연히 생활상이나 가치가 반영될 수밖에 없겠지만 요즘처럼 하이트렌디한 세상에선 다른 요소들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들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흔히 말하는 인테리어 부분은 얼마든지 가주의 마음이나 형편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주변 환경은 원래 입지시부터 잘 고려되지 않으면 어떻게 손 써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매일같이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바라다 볼 때 맞아주는 주변풍경들이 강이나 바다 또는 숲을 이룬 산인지 아니면 빌딩 숲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인지는 이제 우리가 집을 고르거나 구매할 때 너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변 풍광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담아두는 방법에 있어 미술작품에서는 다양한 형태들을 볼 수 있는데,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두고 사조가 나뉘기도 하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림의 모양은 보는 눈의 위치가 높은 곳에 있을 때는 새의 관점이 되어 조감도가 되고 반대로 낮은 곳에 눈이 있을 때는 곤충의 입장이 되어 충관도가 된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눈의 거리와 시야, 그리고 시각의 관계로 그림모양이 결정되는데, 이론적으로는 도상(圖上)에서 무한 거리에 있는 점의 투시는 소실점과 일치하므로 눈의 위치에 따라서 설정된 지평선상에 있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기초로 원근법이 성립된 것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이지만 공간사상의 원근관계를 그리려는 생각은 옛날부터 있었음을 미술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의 모양을 그리기 위해 그리스 화가 폴리그노토스(BC 5)는 원근법적 관계로 자연의 표현을 생각했다고 전하나 조감도풍의 그림 형식과 화면상의 위치관계로 가까운 것은 아래로, 먼 것은 위쪽으로 그리는 형식이 나타났다.

그리고 아폴로도로스는 광선에 의한 사물의 현상에서 음영화법을 창시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색채의 농담변화로 공간감각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동양회화에서도 먼 데 있는 것을 화면 위쪽, 가까운 데 있는 것을 아래쪽에 그리는 방법은 오래된 형식이었다.

무대예술에 있어서도 오페라 같은 극예술을 할 때 배경이 되는 세트의 그림이 원근화법이 도입되면서 무대장치가 현실감 있게 정착됐다.

요즘 현대 작품에 있어선 회화작품이든 무대미술이든 오히려 이런 사실적 표현의 기본이 되는 원근법이 무시되거나 변형되기 일쑤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관점의 중요성에 있어 출발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아직은 존중돼야 할 기법이라고 보인다.

우리지역은 사람으로 치자면 천연미인이다. 한 때 주택이 부족하여 우후죽순 공동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진행형이다. 다녀보면 천혜의 절경에 예쁘게 지어진 집들도 보게 되고 어떤 집은 주변 풍광이 돈으로 바꿀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우리가 조망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대가로 지불하는 시대에 살기 시작했다면, 이제 그 비싼 상품에 흠이 가지 않게 잘 다룰 줄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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