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작년 어느 때인가 코리안 심포니의 새로운 지휘자로 부천필의 신화를 만든 임헌정이 영입되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던 적이 있다.

당시 프로그램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었는데 최은규의 수준 높은 해설을 곁들여서인지 음악은 물론, 니체의 심오한 철학적 깊이까지 접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었다.

사실 지휘자 임헌정은 워낙 부천필에서 '말러 시리즈'로 강한 인상을 구축해서인지 다른 이미지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1990년 부천필을 맡아 거의 25년간 생애를 걸다시피 했던 그가 작년 교향악축제의 마지막 날, 처음 교향악 축제에 참여할 때 연주했던 '브람스 교향곡 3번'으로 작별을 고할 때 많은 애호가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가 사반세기 동안 일구어 놓은 음악적 성과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가 새로이 도전장을 내민 코리안심포니(이하, 코심)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사실 순수 민간 악단으로 출발했었다. 지원체계의 한계 때문인지 어느 단계까진 도약했지만 국내 탑클래스라고 자신 있게 평가하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어정쩡한 포지션을 견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코심을 새로운 도전지로 결정한 임헌정의 선택엔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

코심은 현재 문화관광체육부의 지원을 받으며 예술의 전당 상주단체 그리고 국립오페라단의 협력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30여년 재직하며 배출한 엘리트 제자들과 거의 신화로 공고해진 그의 음악적 위상에, 내심 국립단체로 달려가고 싶은 코심의 야망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유일체제에서, 여러 가지 전제가 따르겠지만 그래도 가장 근사치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악단이 코심이 아닌가 본다면 임헌정의 선택은 이유와 명분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향후 행보에 관심이 간다. 아무튼 서서히 전열을 가다듬으며 출력을 내고 있는 코심이 선택한 해외 공연이 오스트리아의 린츠라는 도시란다.
 클래식음악의 수도라 불리는 빈은 너무 유명하고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도 잘 알려져 있는데 린츠는 거기 비하면 좀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린츠는 그 유명한 두 도시의 딱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예의 도나우강이 흐르는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 교통의 요충지라 일찌감치 공업도시로 성장했고 그러다 보니 2차 세계대전 때는 다른 곳보다 피해가 더 심했던 곳이기도 하다. 전쟁을 통해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 공업지대인 우어파르는 미국이, 남쪽인 구 시가는 소련에게 분할 점령되는 아픔도 겪었다.
 남북은 니벨룽겐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쪽 구시가는 여러 음악가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 남쪽의 중앙광장은 삼위일체기념탑이 있는데, 이 탑은 1720년경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퇴치를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진 것인데 이런 종류의 탑은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모차르트도 콘스탄체와 결혼한 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가던 중 린츠에 머물게 되는데 그 때 숙소와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준 톤 백작의 친절과 린츠의 아름다운에 반해 교향곡 36번을 작곡하고 '린츠'라 이름 붙였다. 베토벤도 교향곡 8번을 린츠에서 완성했고 슈베르트도 절친 중의 하나인 오텐발트와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하지만 현재 린츠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후기낭만파 작곡가인 브루크너이다.
 도나우 강변 하류 녹지대인 운터 도나우란데에는 1974년 3월에 개관한 브루크너하우스라는 콘서트홀이 있는데 개관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새롭고 이상적이라고 평가되던 홀로, 린츠 시정부가 '공해의 도시'란 오명을 벗기 위해 린츠 근교에서 태어난 브루크너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건축한 것이다.
 생존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베토벤의 흉내쟁이 정도로 치부되던 브루크너, 거기다 브람스와 바그너의 음악적 대결이 성행하던 시절 바그너를 지지하며 소위 줄을 잘못선 브루크너. 그가 뒤늦게 환영 받으며 린츠라는 도시의 대표주자로 나서고 있는 이 때, 코심과 임헌정은 '브루크너 시리즈'를 들고 코리안 심포니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 오케스트라로 도약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그 의미심장한 여행지가 린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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