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예전에 유럽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거리 벽면이나 철도건물 같은 곳에 타이포크래피나 그림 같은 것을 그려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땐 그것이 그곳에 있는 미술대학이나 작가들이 지자체와 협의 하에 공공미술의 영역으로 작업한 것이겠거니 추측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벽화마을이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생겨나면서 이런 영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벽화마을과는 좀 다른 개념으로 그래피티(graffiti)라는 스트리트 아트의 영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거리예술가들이 게릴라처럼 밤사이 특정 지역에 나타나 작업을 해놓고 사라지는 일이 빈번해지고 또 그 내용이 현실참여적인 것들로 채워지면서 예술가의 창작 권리와 시민들의 선택적 관람권리 또는 재산권 등과 마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정부정책 또는 정부가 부담을 가질만한 사회적 이슈를 그래피티 형태로 표출해 내는 행위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에겐 아직 좀 낯선 이 그래피티는 서양사회에선 젊음과 저항의 상징으로 익숙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처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해 지역에 따라선 법으로 금지된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피티(graffiti)'의 어원은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라고 한다. 주로 전철이나 건축물의 벽면, 교각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대한 그림 등을 그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힙합문화의 일부분이라 하는데, 1960년대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 낙서가 범람하면서부터 본격화된 문화로 보고 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의 반항의 표현 또는 소수민족이나 흑인들의 내재된 불만의 표출 등으로 시작됐는데 그러다 보니 그들이 즐겼던 랩음악과 브레이크 댄스 등과 함께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다른 나라의 젊은이와 예술가들에게 퍼져 나가면서 인종차별 철폐나 에이즈 퇴치, 반핵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나타나면서 단순한 낙서가 아닌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에 이른 것이다.

런던 동부의 작은 동네 쇼디치는 셰익스피어가 상당 기간을 거주하며 '커튼 시어터'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던 곳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 파격적인 시선으로 예술계에 충격을 준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 미술사의 거대 물결을 만들어 낸 YBA(Young British Artists) 등이 다 쇼디치를 무대로 한 작가들이다.

쇼디치는 17세기에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피신해 왔고, 20세기 들어서면서 유대인이 나치를 피해, 또 1960년대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몰려들면서 크게 3차례에 걸쳐 이민자 유입이 이뤄진 곳이다. 셰익스피어의 뿌리 깊은 정신적 토대 위에 문화의 다양성이 덧입혀 지면서 새로운 창조들이 일어난 것이다.

아픔을 안고 이주해 온 추방된 자들의 새로운 고향이어서 일까. 이들은 서로 다름을 토론을 통해 해결하고 학습을 통해 익히며 동화해 나갔다. 이런 이들의 생활방식을 함축하면 소통(Communication)·공동학습(Co―learning)·연결(Connected)로 상징되는 '3C 정신'으로 귀결된다.

바로 이 쇼디치의 명물 중 하나가 '그래피티'이기도 하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들의 태그(Tag)가 선명하다. 길거리 낙서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저항예술가 뱅크시는 이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쇼디치의 자랑이 됐다.

쇼디치는 이제 첨단 디자인의 생산지로, IT와 문화예술의 결합으로 인한 테크시티로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전체 주민이 예술가라고 불리는 마을, 쇼디치에는 그래피티가 도시의 경쟁력이고 소통의 수단이다. 이들의 성공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진정한 소통과 배려의 방식을 우리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그래피티가 가지는 효용성은 디지털시대 이후 훨씬 강력하고 직접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예술로서 또는 메시지로서 어떤 효용성을 갖기 위해선 단순히 흉내 내기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지역사회로부터 박수 받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제안이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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