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詩人(자료 : 거제향토문화사)

무엇이든 판단을 잘해주는 열다섯 살 난 사람이 거제 사등성에 원님으로 부임하여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하루는 가난하게 살아가는 어느 옹기장수가 산 너머 동네에 팔려가는 중이었다. 산마루 쯤 왔을 때 짐이 무겁고 몸도 피곤하여 옹기를 쌓은 지게를 작대기로 받쳐놓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는 바람이 휭하니 불어오더니 옹기를 쌓은 지게를 넘어뜨려 옹기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사람이 그랬다면 옹기값이라도 물릴 수 있지만 바람이 그렇게 했으니 참 딱하게 되어 버렸다.

옹기장수는 빈 지게를 지고 터벅터벅 마을로 내려왔다. 가난한 살림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 모아 옹기장사를 시작했는데 옹기가 다 깨어졌으니 살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소문을 들으니 고을 원님이 나이는 어리지만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해 준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원님을 찾아갔다.

옹기장수는 원님 앞에 엎드려 자초지종을 말했다. 원님이 가만히 듣고 있더니

"네 말을 잘 알아들었다. 그 나쁜 바람을 용서해서는 안 되겠구나. 오늘은 돌아갔다가 모레 아침에 다시 여기로 오너라"

원님이 옹기장수를 돌려 보내놓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는지 걱정이었다. 가난한 옹기장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원님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람은 뱃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를 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 배를 부리는 사람들을 모두 불려 들였다. 그리고 한 사람씩 오게 하여

"너는 어디사노?"
 "아무데 삽니다."
 "어제 배 타고 나갔제?"
 "예"
 "갈 때는 어떤 바람이 좋고 올 때는 어떤 바람이 좋으냐?"
 "예, 갈 때는 무슨 바람이 좋고 올 때는 무슨 바람이 불어야 좋습니다."
 "바람 때문에 배가 잘 갔으니 바람 덕을 봤겠구나"

이렇게 뱃사람 모두에게 묻고는 문서로 꾸며 놓고 다음날 옹기장수와 뱃사람들을 모두 동헌에 모이게 하고는

"뱃사람 너희들은 바람 덕을 톡톡히 봤으니 그 값을 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하고는 바람값으로 거둔 돈을 옹기장수에게 주면서

"이 돈을 네가 가져라. 바람 덕을 본 사람들은 바람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렇게 해서 가난한 옹기장수는 독값을 받아 나갔다고 한다.

TIP. 고창녕 전설의 의미(정상박·동아대학교 명예교수)
옹기장수 이야기와 갓 찾아준 이야기는 뿌리가 같다. 다만 회자되면서 내용이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녕 원님의 설화는 거제 상동과 사등면에서 채집 되었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구비문학대계 경남편에 실려 있다. 경상도 일대에 전해지는 조선 후기의 명관 고유(高裕)에 관한 설화는 18세기 이후부터 창녕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대에 <치자담(治者譚)>, <명관설화>, <송사설화>로 널리 알려진 구전설화지만 문헌설화도 그가 선정을 베풀고 명판결을 하였기 때문에 고창녕이라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창녕이 13세에 경상도 어느 고을에 원님으로 부임해 오자, 고을 이방들이 그를 어리다고 얕보았으므로 고창녕이 이방들에게 수숫대를 뽑아오게 해서 분부하기를, "그 수숫대를 통째로 소매속에 넣어 보아라"고 하였다. 이방들이 넣지 못하자, "한 살 먹은 수숫대도 소매 속에 넣지 못하면서 열세 살이나 먹은 한 고을의 목민관을 마음대로 하려 드느냐?"고 호통을 쳐서 이방들을 제압 하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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