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농사가 잘되고 못 됨은 물이 좌우했고 물은 곧 비를 의미한다. 그러나 비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일 뿐이다. 따라서 가뭄이 계속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하늘을 어르고 달래야 했다. 그것이 기우제(祈雨祭)다.

기우제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산천기우(山川祈雨)로 주로 지방수령이 제관이 되어 산이면 천신에게, 강이면 용왕에게 비오기를 기원하는 방법이다. 부정기우(不淨祈雨)는 신을 화나게 하는 방법으로 산에 개나 돼지의 피를 뿌리거나, 강에 개나 돼지의 대가리를 던져 그 노여움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이다. 산꼭대기 같은 영지(靈地)에 쓴 무덤을 마을 사람들이 밤중에 몰려가 파내는 암장파묘(暗葬破墓)도 흔히 있었던 일이다.

기우제는 지방에 따라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데 민간 기우제는 여자와 관련된 것이 많다. 하늘, 남자는 양(陽)이고, 땅, 여자는 음(陰)이다. 하늘이 남자이기 때문에 땅인 여자가 나서서 아양을 부리거나 성적유혹으로 하늘이 정액(비)을 쏟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긴 장대 끝에 피 묻은 여자의 속곳을 걸고 깃발처럼 휙휙 휘두르면서 앞서면 그 뒤를 동네 아낙들이 솥뚜껑 같은 것을 두들기며 따른다. 이때 남정네들은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여자의 사타구니처럼 갈라진 디딜방아의 방아다리를 하늘을 향해 거꾸로 세우고 과부의 피 묻은 월경서답을 걸쳐 놓기도 한다.

'가물 때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箕)를 씻으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곡식을 까불려면 키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키=바람=음기(淫氣)=여자의 바람끼를 상징한다. 마을여자들이 개울에 나가 키를 씻는 의식은 부정의 정화이며 이때 월경 중이거나 임신한 여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중부지방에서는 42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우려되면서 땅도 타고 마음도 타니 여러 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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