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포동 박정례  할머니

콜라만 드신지 20년

아직까지

병원 한 번 안가

 

지난 15일 능포동에 살고 있는 박정례 할머니를 찾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의 며느리 이귀남씨(67)가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아들 강점동씨(72)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올해 나이는 일백셋. 부산 기장 출신으로 80여년 전 거제도로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머님이 지난해 방에서 일어나다 넘어져 다친 후론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어요.” 음료수를 내오던 귀남씨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친다.

이야기 소리에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할머니가 몸을 일으킨다. 1백년의 세월이 굵게 패인 주름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 것만 같다.  

4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의 가장 큰 벗은 청량음료. 20여년 전부터 마시기 시작한 콜라가 지금은 물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 머리맡에 항상 콜라를 준비해 놓는 것이  며느리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20년이 넘도록 청량음료를 마셨지만 할머니의 건강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밥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잔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 노환으로 움직이는 것이 조금 불편하고 눈과 귀가 어두운 것 말고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 가족들도 무척 신기해한다고 한다.

귀남씨는 “올 여름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면서 “아무래도 어머님 위장은 ‘무쇠’로 만들어 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족들에게 장수의 비결을 묻자 ‘소식(小食)’하는 식습관을 첫째 이유로 들었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절대 과식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죽처럼 진밥은 절대 먹지 않고 된밥만 먹는 것도 할머니만의 특별한 습관이다.

이가 모두 빠진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명태포를 입에 달고 산다는 할머니는 고구마와 카라멜 땅콩도 무척 좋아하신다고.

며느리 귀남씨의 밝고 화통한 성격도 할머니 건강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시어머니 수발에다 3번의 허리수술로 힘든 몸이지만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할머니의 가장 크고 소중한 벗이 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올 때면 “누고, 누가 왔노”라며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확인한다는 할머니는 다른 건 잊어도 손주들의 이름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드시는 것도 잘 드시고 병원 한번 안갈 정도로 건강하신 걸 보면 아직 좀 더 사실 마음이 있으신 것 같다”는 귀남씨의 말을 뒤로하며 하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청면 주말선  할머니

100세가 넘어도

속옷 빨래만은

자신의 힘으로…

 

올해로 102세인 주말선 할머니. 옥포 국산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나이 열여덟에 하청면으로 시집 왔다.  몇 년 전까지 큰 아들네에서 지냈던 할머니는 현재 작은 아들 신복남씨(70)와 함께 살고 있다.

일백살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며 속옷 빨래만은 어느 누구에게 미루지 않고 손수 하신다는 할머니는 젊었을 때부터 깔끔하기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속옷 빨래뿐만 아니다. 혼자 세수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비질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며느리 김주연씨(64)는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집밖으로 마실을 다닐 정도로 정정하셨는데 이젠 다리에 힘이 많이 빠지셨는지 잘 걷지를 못한다”면서 “요즘은 사람만 보면 다리에 힘 좀 넣어달라고 다그치신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100세가 되던 해에 가족과 친지, 교인들이 하청교회에 모여 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워낙 나이가 많아 하청에서 할머니는 꽤 유명인이다.

할머니 건강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밥심’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먹지는 않는다. 반찬 가짓수를 따지지 않고 끼니때마다 드시지만 소식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좋은 것도 조금씩 자주 드신다. 채소와 감자, 고구마, 떡을 특히 즐긴다. 오징어도 좋아해 틀니를 끼고 오물오물 씹어 드신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은 큰 아들 생각에 하염없이 눈시울을 적신다는 할머니는 틈만 나면 “내 구덕에 가서 죽을란다”며 주연씨를 마음을 아리게 한다. 논·밭일에다 산간지역 개간 등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지만 90년 넘게 살아온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생각이다.

“처음 작은 아들집에 왔을 땐 집으로 가자며 가방을 챙기셔서 곤혹스러웠다”는 주연씨는 “아직도 어머니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님 생신 때 이렇게 형제들이 모이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 아니겠느냐”라는 말을 한지가 벌써 5년이 지났다는 가족들.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가족들의 말이 오랫동안 귓전을 맴돈다. 

 

칠천도 옥계마을 윤봉선  할머니

“가족과 이웃이

  있어 살아가지예”

 

태풍 ‘나리’가 소멸된 지난 17일 칠천도 옥계마을에 살고 있는 윤봉선 할머니를 찾았다.  주민등록상으로 102세인 할머니의 실제 나이는 한 살 많은 103세. 아주 탑골 출생인 할머니는 스무살에 지금의 마을로 시집왔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아들인 서창교씨(78)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루 한쪽에 자원봉사자들이 보낸 선물 박스가 눈에 띄었다. 방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아들과 며느리 제병악씨(75)와 살고 있는 할머니는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3급 시각 장애인. 며느리인 제병악씨도 지체2급 장애인이어서 가족들을 돌보는 서창교씨의 고충이 여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2년 전까지만 해도 살살 움직이며 삽작으로 나가곤 했는데 인자는 집안에서만 지냅니더. 그래도 음식은 조금씩 잘 자십니다.”

온전치는 않지만 아직은 정신이 남아있어 옛날 일을 기억도 하고 요강에다 볼일도 보신다는 할머니. 노환으로 귀까지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아들 말은 제법 알아듣는다고.

“어머니는 고만고만하신데 내가 요즘 허리가 아파서 큰 일”이라는 서창교씨는 “그래도 면사무소나 자원봉사단체에서 신경을 많이 써줘 너무 고맙다”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동부면 산양 임금봉  할머니


주민등록상 108세

실제나이는 98세

 

임금봉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칠천도에서 동부면으로 향했다. 동부면 산양리에 살고 있는 임금봉 할머니의 주민등록상 나이는 1백8세. 하지만 실제로는 98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말을 못하는 일흔 여섯된 딸과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는 동부면 출신으로 50여년 전 남편과 사별 뒤 두부장사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할머니를 만나 큰 소리로 이름을 물었다. “임금봉”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주름진 얼굴로 “누고, 누고”를 되풀이한다. 

할머니와 딸과는 더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어 인근 주민들을 찾았다.  마을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백살이 넘는 할머니에 대해 아십니까”라고 묻자, 한 할머니가 “아직 백살은 안넘었을건데…”라며 “그래도 오래 산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할머니를 찾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아쉽다는 동네 할머니들의 대답을 들었다. 노환으로 잘 들리지도 않고 정신도 가끔씩 놓으시곤 하지만 식사는 그럭저럭 하신다는 것이 이웃 사람들의 설명이다.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지만 집안에서 혼자 조금씩 움직이는 데는 불편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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