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대통령은 총리가 곤궁에 처해 있을 때 해외순방에 나섰다. 잠깐 비껴 있을테니 자신이 책임지고 수습해 보라는 듯. 더구나 출국일이 세월호 1주기 되는 날이어서 대통령이 이 일을 시종 너무 피해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비등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총리는 공관에 갇힌 채 파자마 바람으로 뜰을 거니는 모습까지 언론에 노출되고 말았다.

정치권과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의 시선이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귀국 시점에 대통령이 편찮으시다는 청와대 발표가 있었다. 이번엔 대통령의 안위와 관련된 일들은 국가기밀에 속하는 것이라며 정보관리의 부재를 문제 삼아 또 다른 비난들이 터져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총리의 사표가 수리됨으로써 잠잠해 지기는 했지만 최근에 국가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논점들이 참 지루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통하자고 하는 것은 그렇게 꼭꼭 숨기듯이 말하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병명까지 적시해서 대통령의 건강상태까지 긴장상태의 이 정국에 꺼내 놓는 것이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분들에게 국가 재난과 방위 그리고 우리의 미래 같은 소중한 것들을 무조건 신탁해도 되는 것일까. 갑자기 우리도 위염이라도 걸린 듯 속이 불편해 진다.

거듭되는 인사의 난맥이 비단 한 사람의 부도덕이나 유독 정치권에 국한된 타락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라 인식하는 국민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냥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고 덜도 더도 말고 나와 내 친구, 내 가족의 현 주소 쯤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예민한 일들이 터질 때마다 각 진영에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고 죄를 묻고 심지어 그 반사이익으로 현실 속에서 승리자가 되려하는 것이 반복되는 패턴이다.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이 뻔한 수순에 언제나 훌륭한 조연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나 선출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선 어머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선출직의 경우 본인의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도박에 가까우리만큼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패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승자도 궁극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더라도 이후 공직자의 삶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 고위직일수록 저녁이나 휴일이 있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분들의 인터뷰나 은퇴 후 소회는 늘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또 한편으론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자들이 가지는 보상심리는 종종 위험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후의 부담스런 결과들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져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정말 이제는 이런 안타까운 구조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내가 종사하는 음악축제에 필요한 인턴을 선발하는 절차를 가진 적이 있었다. 취업이 쉽지 않다 보니 선발인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인원이 응시를 했고 상당수가 매우 우수한 인력이어서 선발하기 보다 탈락시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원자 중 기억에 남는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명문 S대 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외무고시에 응시해 1차를 통과한 상태에서 3개월 인턴에 응시한 터라 그 지원 배경이 몹시 궁금해서 물었더니, 얼마 전 학과 선배들 모임에 참여했는데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는 외교관 선배 말이, 좋은 외교관이 될려면 문화예술에 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활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외교관들의 모임에 나가면 빅 이슈나 국가적 현안들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음악회를 같이 보거나 전시회를 관람하고 서로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게 대다수라는 것이다.

보편적 언어인 고전음악이나 미술감상의 경험이 없이는 금방 그들로부터 소외되기 쉽고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의제가 생길 때도 정보에서 멀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외교관 개인의 문화적 소양이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의 커리큘럼이 철학적 사유나 문화예술 또는 레져활동과 관련한 프로그램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배려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 죽어라 공부만 한 사람이 외교관이 될 공산이 크다. 이는 비단 외교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 중 상당수가 문화예술 분야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간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면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세련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진 공직자와 지도자가 많은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지금은 어엿한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A군이 멋진 공직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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