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면 다대마을, 전통적 육소장망 방식 고수한 채 지난 3월부터 봄 손님 기다려

깎아지른 절벽 위 망루서 50년 차 망쟁이 전담…고기 잡히면 항구 선원들에 연락

제철 숭어, 도미 보다 맛 좋아…기다림의 연속이지만 그물 속 고기보면 시름이 싹

 봄의 향이 물씬 풍기는 4월, 남부면 다대마을 산비탈에 세워진 허름한 망루 하나. 그곳에 망쟁이 50년 차 임정근씨(79)씨와 16년 차 윤길정씨(56·다대자율공동관리체 대표)가 있었다.

 "저거 숭어떼 아입니꺼."

 "아이다. 농어다."

 멀리서 오는 고기떼를 윤씨가 확인하고 알려주면 그것을 보고 숭어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건 임씨의 몫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농어도 숭어 떼도 보이지 않건만 넓은 바다를 보면서 하는 그들의 대화는 멈출 줄을 몰랐다.

 레이더와 음파 탐지기로 하는 어업이 일반화된 시대에 이들의 대화가 의아스럽겠지만, 이들의 전통적인 숭어잡이는 어로장인 망쟁이의 눈에 의존해 적게는 수백 마리, 많게는 수천 마리를 잡아 올린다.

 다대마을의 숭어잡이 방식은 육소장망(숭어가 들 만한 물목에 그물을 깔아두고 기다리고 있다가 망루에서 망쟁이가 물 빛깔과 물 속 그림자의 변화로 어군을 감지해 지시를 내리면 재빠르게 그물을 올려 잡는 전통적인 어법)이다. 부산 가덕도도 최근까지 이 방법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거제의 다대·다포·대포·양화·학동·선창에서만 옛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숭어잡이는 바닷길 양쪽에 부표를 띄운 작업대 아래로 그물을 내려 숭어 군집이 지나는 순간 끌어올려 잡는다. 그물은 4800㎡(60x80) 크기로 하루 평균 어획량은 1000마리 가량인데 가장 많이 잡을 때는 1만3000마리까지 잡힌다고 한다.

 현재는 작업이 기계화 돼 7~8명의 인력으로 숭어를 잡지만 과거에는 배 6척에 총 25명이 모여 손수 그물을 들어 올리며 작업을 했다.

 16년 전에는 지금의 망루도 없었다. 세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망을 봐야 했다. 배 6척과 뱃사람 25명이 바다에 설치된 그물 양쪽에 배를 타고 대기하고 있다가 망루에 있던 두 사람이 신호를 주면 그물을 잡아 올렸다. 망루를 설치한 뒤로는 비와 강풍에도 끄떡없다. 게다가 육소장망을 개량해 엔진의 도움으로 바다에 설치한 그물을 들어올리고,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등 고기 잡는 방식도 개선됐다.

 양력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과 달리 물고기들은 월력에 따라 움직인다. 숭어는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우수에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5월까지가 제철이다. 숭어는 숭상할 숭(崇)어, 빼어날 수(秀)어로 불릴 만큼 명성 있는 어종인데 제철엔 생선회의 대표주자 도미보다 더 맛이 좋다. 다름 아닌 요즘이 숭어가 가장 맛있을 때다.

 거제의 숭어잡이는 2월 초순부터 어장을 준비해 5월 말까지 행해진다. 그 후로는 숭어 군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숭어는 떼로 몰려다닐 때 더 싱싱하고 맛도 좋다고 한다. 숭어는 몸체가 클수록 속도가 빨라 속도가 느리다 싶으면 숭어 떼가 망에 들어와도 그물을 들어 올리지 않는다.

지난해 밍크고래 잡혀 화들짝

숭어잡이는 하루에 한두 번 그물을 올리는데 다대마을의 지리 특성 상 와류 현상(물 소용돌이)이 자주 일어나 숭어 떼가 흩어질 때도 많다. 숭어잡이 할 때 가장 좋은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와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어져 있는 때다.

 햇살이 많이 비치는 날이면 빛이 바다에 반사돼 숭어 떼가 안 보이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구름이 있는 날에는 구름의 그림자 때문에 숭어 떼를 확인하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숭어잡이에서 사용하는 그물은 일반 그물인 덮그물과 다른 홑 그물이다. 그래서 그물이 걸리거나 꼬이는 문제가 없어 작업하기 한결 수월하고, 사고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임씨는 "지난해 숭어그물을 들어 올리니 길이가 4m가 넘는 밍크고래가 들어있었다"면서 "망쟁이를 하면서 겪은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웃음을 보였다. 이 밍크고래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숭어잡이에 가장 좋은 때는 간조(바다에서 조수가 빠져나가 해수면이 가장 낮아진 상태)가 되기 직전이다. 윤씨는 "만조일 때는 수심이 깊어서 망쟁이의 눈으로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름해 보이는 망루지만 두 사람이 생활하는데는 불편함이 없다. 5년 전 망루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생활도 보다 편리해졌다.

 

 

숭어 잡히자 손살같이 바다로

"저거 숭어다."

 망루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임씨의 입에서 다급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임씨의 소리에 윤씨가 서둘러 포구에 대기하고 있는 선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 임씨는 그물에 들어온 숭어가 빠져나가지 않게 소형 크레인에 엔진을 돌려 그물을 들어 올린다. 갇힌 그물에서 박차 튀어 오르는 숭어 떼로 바다 일부분이 하얀 포말로 뒤덮였다.

 같은 시각, 항구의 컨테이너 박스에 전화가 울렸다. 숭어가 떴다는 소식이다. 휴식을 취하던 선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급히 작업복을 입고 배에 올랐다. 어장으로 출동하는 선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선원들이 어장에 도착하면 망루에서 그물과 연결된 와이어를 더 높이 끌어당긴다. 수백 마리의 숭어가 그물 속에서 펄떡였다. 봄 햇살에 반사된 숭어 떼가 은빛으로 빛났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물에서 배로 숭어를 옮겨 담느라 선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기만 했다. 망루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망쟁이들도 작업을 재촉하며 힘을 더했다. 숭어들의 힘찬 퍼덕거림에도 숙달된 선원들은 별무리 없이 숭어를 배에 옮겨 실었다.

 바다 위에서의 작업이 끝나자 김정곤씨는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하지만 이때가 참 살맛나는 순간"이라며 "보람차다"고 기쁘게 말했다.

 배가 항구로 돌아오자 숭어를 실어갈 차량이 벌써 대기하고 있었다. 숭어를 잡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량에 고기를 옮기는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대에서 잡힌 숭어는 경남 일대와 서울에 보내진다. 

 

힘들지만 숭어 잡히면 '따봉'

5월 말까지 숭어잡이가 끝나면 어장을 해체했다가 음력 8월 즈음에 가을 숭어 잡이가 다시 시작된다. 김정곤씨는 "바다위에 떠있는 뗏목을 회수하는 작업이 아주 고된 작업"이라면서 "여기서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이 65세라 힘이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최근 언론에서 해수어종에서 고래회충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보도돼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이곳 숭어에서는 고래회충 등이 한 번도 발견 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남부면 관계자는 "요즘 수온이 낮아 어획량이 떨어졌지만 남부면의 어장이 외만에 형성되면서 숭어가 싱싱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참숭어 양식이 없을 때는 가격이 높았지만, 양식이 되면서부터 가격이 예전만큼 못 하다. 숭어가 떼를 형성하는 양도 줄었다. 현재는 평균적으로 연간 100톤 가량을 잡는다. 3년 전에는 한 번에 4만 마리의 숭어 떼를 들어 올리다 그물이 터진 적이 있다고 한다. 임정근씨는 "그물이 터져도 숭어가 많이 들어오면 기분은 좋다"면서 "내내 숭어만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는데 잡아서 들어 올린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고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만선의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는 망루의 망쟁이 임씨. 그는 "오늘 안 오면, 내일은 오겠지. 숭어는 기다리는 시간만큼 늘 행복을 안겨주는 고기야"라며 바다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망쟁이의 눈, 오랜 노하우가 필요해

전통적인 숭어잡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 망쟁이라고 불리는 어로장이다. 어로장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망루에서 숭어의 움직임을 읽는다.

 파도가 출렁이고 햇빛이 반짝이는 넓은 바다에서 숭어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은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으로 일반인과는 다른 예리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50년 경력의 베테랑인 임정근씨는 "오랫동안 매일 하던 일이라 잘 보이는 거다"며 겸손해 했다. 윤씨는 "햇빛에 눈이 부시고 구름의 그림자 때문에 헷갈려도 다년간의 경험으로 임 어로장은 숭어 군집을 잘 알아챈다"고 말했다. 그는 "어로장은 1년 중 4달(2∼5월) 밖에 일을 하지 않고, 하루에 12시간 정도 망루에서 물고기를 감시해야 하는 직업이라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라고 걱정도 비쳤다.

 망쟁이는 어류를 확인하는 눈, 어류의 헤엄치는 방향, 어류가 어망에 들어가는 타이밍을 아는 것과 선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망쟁이 일을 해온 임씨는 다른 곳의 망쟁이에게도 기술을 사사했다. 하지만 임씨가 이 일을 배울 때만 해도 어른들이 가르쳐주지 않아 어깨너머로 배우느라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한다.

 임씨는 "숭어잡이가 한 철이라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게 걱정"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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