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통영YMCA 사무총장
삽짝에 만개했던 매화가 바람결에 꽃잎을 날린다. 날리는 꽃잎 쫒으며 곤줄박이 직박구리 꽃가지를 넘나든다. 볕바른 언덕엔 진달래가 수줍게 피었다. 개나리와 목련, 벚꽃의 꽃망울이 한껏 부풀었다. 이들도 연이어 화사하게 피어날 테다.

아침저녁은 얼굴이 시리고 또 어느 며칠은 모두를 움츠리게 하는 동장군이 그늘 속에 웅크리고 있어 꽃을 시샘 하지만 한낮엔 완연한 봄을 느낀다. 아니다, 봄의 느낌은 벌써 전에 왔다.

페이스북의 지인들로 부터 이미 벌써 낙엽들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복수초의 노란 꽃과 연한 잉크색의 봄까치꽃, 하얀별꽃, 노루귀, 바람꽃에 다양한 색의 크로커스 꽃대를 담아 보내온 봄소식을 받았다. 이렇게 몸으로 느끼기도 전에 이미 곳곳에서 봄이 날아다녔다.

아니지, 이보다 더 훨씬 빠른 봄맞이가 탐욕스런 사람의 목대에 와있었지 않았는가. 산 계곡에 눈이 쌓였고 우리 보통의 사람은 땅이 얼었다고 목도리를 동였을 때, 누구는 봄의 생기가 나무의 모세혈관을 타고 오름을 알고 거기에 빨대를 꽂아 그 수액을 빨아먹고 있었음이 아니던가.

이렇게 입춘의 춘첩이 아니래도 우리는 이리 저리 봄을 맞는다. 우리 일반의 이 봄맞이와 농부의 봄맞이는 전혀 다른 듯하다. 우리는 겨우 눈으로 보아서 알고 코끝으로 맡아서 알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지심(地心)으로 알고 맞는 듯하다. 볕과 바람과 흙의 속삭임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 거름을 내고 흙을 다듬고 고른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심는다. 땅과 나무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고 겨우내 입혔던 거적을 벗겨주고 가지를 다듬어 단장을 시켜준다. 내 이웃 농부가 그냥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내에서 놀러온 친구는 만개한 매화를 보기도 전에 코부터 싸쥔다. 사방천지 깔린 두엄에서 나는 냄새를 못 견뎌서이다.

우리와 다른 봄맞이는 어부에게도 있다. 고기잡이 하는 친구는 바다위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다르고 결이 달라졌다 한다. 바닷물의 투명도가 달라지고 감촉과 냄새가 다르다고 한다. 어제까지 보이던 고기가 보이지 않고 새로운 고기가 보인다고 한다. 낚시와 그물채비가 다르고 물간에 담겨지는 어종이 달라지는 이유다. 농부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들이 봄을 체감하는 것은 같다. 몸과 마음, 온 감각으로 봄을 맞는 것이 같다.

마침하게 봄비가 내린다. 농부나, 어부나, 누구라 할 것 없이 촉촉이 젖어드는 봄비다. 이제 이 비 그치면 땅속과 바깥의 생물들은 더 힘 있게 솟구치리라. 노랑과 연초록의 싹으로, 더러는 빨갛고 하얀 순으로 저마다의 나타내어지는 생명력에 우리는 또 감탄하고 노래하리라.

'간밤에 봄비가 왔어요. 새싹이 돋네요. 참 예쁘네요.'

동시에 이어 두보의 '어느 봄밤 반가운 비'도 읊조려 본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면 생명이 싹트고 자라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가늘게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강위의 배 불 밝게 빛나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이른 아침 붉게 젖은 땅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엔 꽃들이 활짝 피었네.'

그렇다. 봄비는 생명이다.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 이 생명력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온다. 그리고 살며시 온다. 촌집 처마밑 물받이 곁에 광대풀꽃과 봄까치꽃이 이 생명력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살포시 피었다. 봄이라며 웃는 듯하다.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그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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