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논설위원

여섯 살 무렵이었다. 염소를 잡은 고삐가 손에 감겨 넘어진 채로 신작로 길을 질질 끌려갔다. 신작로 길을 얼마나 끌려갔는지 무릎은 피투성이가 됐다. 지금도 오른쪽 무릎에는 그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 이 일로 나에게는 염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양이 평화와 순종의 아이콘이긴 하지만 고집스런 면이 있다. 소고삐를 쥔 사람은 뒤에 서지만, 염소고삐를 쥔 사람은 앞에 서야 한다. 이솝우화에 두 마리의 양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함께 물에 빠지고 만다는 이야기는 양의 성격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

염소와 양은 다르다. 염소는 산양(山羊 goat)이고 양은 면양(綿羊 sheep)으로 생물학적으로 염색체의 수가 다른 속(屬)이지만, 산양이 거의 멸종되면서 양으로 두루 쓰이고 있다. 지금의 흑염소는 일제강점기 때 수입된 외래종이다.

이성계가 어느 날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모두 떨어져나갔다. 이를 무학대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곧 왕이 된다고 해몽했다. 양(羊)에서 뿔과 꼬리를 떼면 왕(王)자만 남기 때문이다.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양이다. 아브라함이 백세 때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할 때 하나님이 준비한 희생의 제물이 숫양이었고, 모세의 출애굽을 위해 여호와신이 사람이나 동물의 맨 처음 난 것을 죽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양(羔羊:일년 된 어린 숫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저주를 피해갔다. 성경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올해는 '양띠'의 해다.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양띠 해에는 아들 딸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양띠 여자는 착하고 끈기가 있고 과묵한 성격의 요조숙녀이자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후덕한 면이 있다.

한자 양(羊)은 머리에 두 개의 뿔과 수염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아름답고(美) 착하고(善) 의롭고(義) 희생하고(犧) 상서로움(祥)에는 모두 양(羊)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양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모양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