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 칼럼위원

▲ 이상복 옥포 자향한의원장
요즘엔 보기 힘든 물건이 되었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다듬잇돌(다디미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빨래를 한 후 옷감을 방망이로 두드리는 다듬이질을 할 때 옷감 아래에 받치는 돌을 가리키는데, 이 '다듬잇돌을 베고 자면 입이 돌아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한 입이 돌아가는 병이 바로 구안와사(구안괘사)인데요, '와사풍'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활 중에 드물지 않게 나타날 수 있는 구안와사에 대해서 2회에 걸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안와사는 현대적인 병명으로는 '안면신경마비'라고 하는데요, 7번 뇌신경인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경로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얼굴에 마비가 나타나는 질환으로 주변에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다듬잇돌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하게, 조선소의 도시인 거제 특성상 좁은 철판사이에 들어가 차가운 철판에 얼굴을 붙이고 용접을 하고 나왔더니 얼굴이 돌아간 환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구안와사로 한의원에 올 때는 주로 입이 돌아가거나 볼에 감각이 이상하고 눈이 잘 감기지 않으며 물이나 밥을 먹는데 입에서 흘러나온다든지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 귀 뒤가 아프고 혀의 감각이 이상하다는 식의 증상이 나타나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본인은 못느끼는데 주위 사람들이 얼굴이 이상하다고 빨리 한의원으로 가보라고 말해줘 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원인은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이 병은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수면 등의 생활습관이 무너진 경우와 위에서 언급한 예와 같이 신경이 지나가는 곳에 찬 것을 오래 대고 있으면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 기온변화가 심한 환절기에 환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면신경이 지나가는 경로에 여러가지 감염이나 염증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중이염과 같이 귀와 연관된 감염과 그 주변의 외상도 안면마비를 일으킵니다.

그 외에도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나 뇌의 문제로 오는 중추성 안면마비도 이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지만 다른 경과를 나타내므로 잘 감별해서 적절하게 치료를 해야 합니다.

구안와사는 진행되는 시기에 따라 구분을 할 수 있는데요, 초기는 병을 인지하는 시기로 대략 발병 후 10일 정도로 신경의 마비가 진행되는 단계입니다.

이 시기는 마비가 진행되어 치료를 해도 증상이 더 심해지거나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치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로 치료를 늦추거나 게을리 할 경우 추후에 병이 잘 낫지 않고 후유증을 남길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이렇게 마비가 진행되다가 신경손상이 멈추고 신경이 재생되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때부터는 증상이 하나씩 좋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신경이 재생이 잘 되어 완치가 되면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의 속도가 떨어지고 일정 기간을 넘어서 증상이 지속되면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이 시기로 넘어오면 아주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증상이 남게 되고 평생동안 장애가 남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후유증으로 시력저하, 안면마비가 계속 지속되는 완고성 안면마비, 안면 근육의 지속적인 떨림 현상이나 마비의 지속으로 인한 근육의 위축, 얼굴근육이 여러 개가 같이 움직이는 연합운동, 음식을 먹을 때 눈물이 나오는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구안와사는 안면신경의 경로 상 발병 부위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마비의 정도, 기타 증상의 유무와 병이 오래 지속되는 정도, 후유증의 차이가 생깁니다.

그래서 얼굴에 단순히 마비만 온 것인지 아니면 미각의 소실, 청각과민(귀가 울리는 이명과 달리 작은 소리가 증폭되어 들리는 현상), 눈물분비 저하, 청각평형장애 등의 증상이 겸해서 나타나는지에 따라 그 병이 낫는 속도와 후유증이 남는 정도에 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이러한 증상을 겸할 때 더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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