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배 칼럼위원

어느 날 집사람과 나들이를 하는데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우리를 에워싸고는 서명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무슨 서명이냐고 물었더니 ‘웃음운동을 벌이는 단체’의 회원들인데 거리에 실습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 잘되었다고 서명을 해주고는 함께 길거리에서 마음껏 크게 웃었다. 여러번을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여들어 함께 한바탕 웃었다. 평시에 드러내놓고 잘 웃지 못하지만 그 날은 그야말로 속 후련하게 웃어봤다. 그것도 생명부지의 사람들과 대로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웃음에 대한 연구가 한참일 때가 있었다. 인간이 웃는 동안 혈압은 떨어지고,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하며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한다.

세포는 더 많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인체는 면역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병원들이 실제로 환자를 웃게 하기 위한 ‘유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 윌리엄 프라이(Wiliam Fry) 교수는 한 의학지(醫學誌)에 웃음은 폐 기종과 같은 만성 호흡곤란증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웃음으로 인한 호흡 방식의 변화는 공기의 흡입 배기량을 늘리며 기관지의 점액을 없애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라이 교수는 “특히 깔깔거리며 크게 웃는 것은, 체내에서 낡은 공기와 새 공기의 교환을 촉진시켜 혈 중 산소농도를 높인다”고 말하고, 웃음이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효과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웃음이 두뇌의 기민성과 기억력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뇌에서 베타엔돌핀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뇌에 모르핀의 분비를 증가시켜 행복감을 맛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효과는 심장마비 중풍 암 등 중증환자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웃을 때 전신이 이완되고 질병을 고치는 화학물질이 혈류로 들어가기 때문에 인체는 자연스러운 균형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로 웃는 웃음을 100번하면 노젓기 운동을 10분하는 것과 맞먹으며, 15초를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한다.

그러면 반대로 울 때는 어떨까. 울음도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수단’으로서 웃음만큼 정신 내지 육체적으로 삶의 짐을 덜어준다고 그는 말한다. 울 때도 혈압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이유의 하나는 덜 울기 때문이란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우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가르침 때문에 잘 울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건강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엄청난 손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감정에 북받쳐 울 때의 눈물은 눈의 염증으로 인한 눈물과는 화학적 성분이 다르다며 감정적인 눈물은 스트레스의 결과로 만들어진 인체의 나쁜 화학물질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행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또 여성의 85%, 남성의 73%가 울고 난 후 심신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많이 웃던지 많이 울어도 좋다는 것이다.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다니 감정을 감추고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 같다.
웃음 실습생들과 한바탕 웃고 난 집사람이 어디 적당한 ‘웃음교실’이라도 있는가 인터넷에서라도 찾아봐 달라고 성화가 아닌가.

인터넷을 뒤져봤으나 서울의 어느 한 병원에 의사가 유료로 ‘웃음강좌’를 개설하고 있다는 사이트만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에는 그런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혹자는 이 글을 읽고 “팔자 좋은 소라 하지 말아라. 지금처럼 어려운 세태에 어떻게 웃음이 나온단 말인갚라고 말할지 모른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한 때 직장을 잃고 사업에 실패하고 각종 선거에서도 실패한 그는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웃어야 한다. 밤낮으로 짓누르는 두려운 고통 때문에 내가 웃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로 나치의 압제를 이겨낸 유대인들이 “유머의 꽃은 슬픈 시대에 핀다”는 격언을 만들어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달픈 세상에 실컷 웃고, 정 웃을 수 없는 처지라면 실컷 울어서라도 감정을 확 풀어버리고 한평생을 여유롭고 건강하게 살아보는 것도 밑질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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