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품다 - 해오름지역아동센터

거제면 해오름지역아동센터, 방과후돌봄교실로 관심 이끌어
다양한 프로그램ㆍ참여도 확대…제2의 부모역할 톡톡히 해내

11월 중순이지만 볕이 따뜻했던 어느 날. 담장을 넘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눈을 돌리니 오래된 교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돌로 정성스레 쌓아올린 건물 외벽 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으며 지붕 위에 작은 십자가 하나가 교회의 소박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가지런히 놓인 책가방과 신발들,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공부방임을 짐작케 한다. 작은 마당에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제각각 깔깔거리며 흙장난·줄넘기·배드민턴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직 공부방에는 학교 과제를 마치지 못한 두어 명의 아이들이 복지사 선생님과 낑낑대며 책에 빠져 있었다. 과제를 먼저 끝내야 빨리 나와 뛰어놀 수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다고 한다.

이곳은 맞벌이나 한부모·다문화가정이 늘면서 방과 후의 보호자 부재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아동 30여 명이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거제면에 위치한 해오름지역아동센터(센터장 정원기 목사)다.

거제면은 공업이 발달한 서부지역과 관광휴양지로 알려진 남부로부터 소외된 낙후 지역으로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문화시설의 부재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곳이다. 또 결손가정의 자녀들과 다문화가정의 취학기 아동들이 급속히 증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해오름지역아동센터의 전신은 1998년 사설도서관으로 등록된 거제광림문고로 도서관으로서의 체계는 갖춰져 있었지만 찾는 아이들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2002년 말에 이곳을 찾은 정원기 목사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2003년 4월에 정식으로 문고 폐지신고를 하고 지역의 어려운 가정형편 자녀 10여명을 모아 무료 공부방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공부방에 다니던 한 여학생의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게 됐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정 목사는 가해자의 구속과 피해 학생의 보호를 위해 여러 활동을 펼쳤다. 또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 결과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게 됐고 2004년 시에서 급식을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으며 12월 지역아동센터로 신고하고 등록하게 됐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교과학습지도뿐 아니라 생활지도·인성교육·외국어교육·심리상담·신체발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교육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는 지역사회와의 끊임없는 연계로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방과후 돌봄교실이 필요한 학생을 발굴하고, 센터 아이들의 학교생활태도·흥미·적성 등의 정보를 공유하고 아이들 성장발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사춘기로 접어든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상담은 거제대학교 교수들의 꾸준한 지원을 받고 있다. 간호학과 이경희 교수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목사님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이 아이들의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자기 표현에 서툴고 감정표현에 어색해 했다"고 첫만남을 회상했다.

"학습 의욕도 저하된 상태였으며 열등감을 없애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상담을 진행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목표의식을 고취시키고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주제를 찾다보니 영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명옥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 영어수업과 상담을 병행하며 아이들의 변화를 관찰했는데 놀랍도록 아이들의 자존감이 향상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픈 아이들이 더 이상 자신의 흉터를 보고도 아파하지 않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봐주고 보듬어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이 센터는 경제적인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을 파악하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관심과 후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원기 목사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아이들과 목욕탕에 간다. 아이들은 목욕활동을 그저 즐거운 놀이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들에게 아이들의 몸은 건강을 체크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며 아이들과 목욕탕에 가게된 계기를 설명한다.

사회부적응으로 자신의 딸조차 돌볼 수 없었던 남자가 있었다. 정 목사는 그 집에 일주일에 한 번 청소봉사를 해주던 아주머니 입에서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됐다. 그의 딸이 자던 이불에서 혈흔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를 수상히 여긴 정 목사의 아내 조영숙 복지사는 아이를 데리고 자연스레 목욕탕에 가서 아이의 몸상태를 살폈고 이후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게 했다. 그러나 뜻밖의 소식은 병원에서도 들려왔다. 정밀검사로 그동안 몰랐던 아이의 선천적인 심장병이 발견된 것이다.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던 그 아이는 그동안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아왔던 것이다. 다행히도 수술만 하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정 목사는 수술비 모금을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딱한 아이의 사정을 얘기하며 후원자를 모집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곳에서 성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어엿한 고3 졸업반이 됐다. 그 이후로 정 목사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 목사는 "어른들의 작은 관심이 아이를 살릴 수 있었고 이는 개인이 아닌 지역민 모두의 힘이 만들어낸 축복"이라며 "10년 간 센터를 경영해 오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 나가고 각자 가지고 태어난 능력들을 키워나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교육에 의해 변화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말하는 정 목사는 이경희 교수의 소개로 부산에 사는 이명옥씨를 알게 됐고 아이들의 영어수업을 부탁했다.

국제영어교사자격증을 취득한 이명옥씨는 "영어로 읽고 쓸 줄 모르던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눈·입·귀가 열려 자신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게 됐다"며 "영어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겨 한층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영어 수업을 통해 안 들리던 영어가 들리고 학교 성적도 많이 올랐으며 영어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곳은 외국어수업 외에도 요가·색종이접기·다도·사물놀이·글짓기학습·청소년야간보호활동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하고 지역사회와의 꾸준한 연계를 통해 높은 참여도를 이끌어냈으며 지역의 관심으로 불우한 가정을 발굴해 후원하고 다문화가정과의 사회통합을 이뤄냈다. 이는 지역의 아동센터가 나아가야 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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