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봉 칼럼위원

▲ 문철봉 거제YMCA 사무총장
도시락의 첫 기억은 어머니가 학교 가는 형들의 점심을 담아 부뚜막에 나란히 올려놓은 것이다. 아침 밥상 곁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도시락을 보며 나도 언제 상급학년이 되어 저 도시락을 먹어보나 하며 부러워했던 기억이다.

어느 순간 상급생이 되어 보자기에 책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 삽짝을 나서며 의기양양했던 기억도, 도시락 먹을 점심시간의 기다림과 넷째시간 마침의 종소리에 환호하며 뚜껑을 열어젖히고 먹던 그 맛과 즐거움은 지금도 군침이 돌고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이다.

도시락의 추억은 한둘이 아니다. 콩가루나 고추장 하나만 가지고도 도시락을 흔들어 맛있게 비벼 먹었고 어쩌다 누군가 계란말이라도 해오는 날이면 이날 점심시간은 우리 모두의 잔치 날이 되었다. 여름엔 감자, 겨울엔 고구마를 싸온 친구와는 밥과 서로 바꿔먹었고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는 도시락 뚜껑에 밥 한술씩을 걷어서 함께 먹었다. 얻어먹는 친구 밥이 더 많고 반찬 또한 다양해 일부러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고 동냥해서 먹던 재미도 있었다. 좋았던 기억만은 아니다.

마땅한 장아찌나 마른 찬이 없어 김치를 넣어주시며 "국물 흐르니 조심해서 반듯이 들고 가거라."하셨지만 깜박하고 평소 습관대로 들쳐 맨 도시락에서 국물이 흘러 책과 옷을 다 버린, 이 잘못의 책망과 후회만큼이나 지겹도록 길게 맡아지던 쉰 김치 냄새, 집에서 식량이 떨어져 며칠을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했을 때는 얻어먹기도 한 두 번이라 슬쩍 딴청하며 운동장가에 나가 물로 배 채우던 서글픔도 있다.

도시락에서 학교급식이라는 지금을 본다. 누구는 무상급식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보편적 복지의 하나라고도 한다. 뭐라 불러도 아이들의 점심이고 이 점심을 굶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가난으로 인해 차등 받고 배고픔까지 겪게 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는데 다른 말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 경상남도 홍준표 지사는 예산을 빌미로 아이들 밥을, 점심을 못 주게 한다. 어찌 저럴까. 홍 지사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 세대다. 저 경험과 기억이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어쩌면 저럴까 싶다.

홍 지사의 이런 행보에 '도지사의 야바위'라 제목 단 글을 어느 중앙지면에서 읽는다. "어찌 저럴까?"한 우문의 현답이다.

2012년 12월 20일 도지사 취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과 노인 틀니사업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재정 건전화 특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2013년 1월 7일 보도자료엔 "예산이 부족해도 복지예산을 감축해서는 안 되고 도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이러했는데 "국고가 거덜 나고 있는데 지금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을 바꾼다. 정말 기막힌 야바위 기술이다.

이렇게 자신이 공언하고 장담한 것을 도민들이 눈 뻔히 뜨고 보고 있는데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야바위는 세 개의 카드 중 하나를 진짜라며 보여주고 이건가 저건가 하며 뒤 섞어선 진짜인 하나를 고르게 한다. 하지만 천만에다. 미끼로 내밀었던 진짜는 현란한 손 기술로 이미 빼버린 뒤라 어느 것을 골라도 가짜만 쥐게 되어 상대를 패하게 하는 사기술이다.

홍 지사의 저 공언은 미끼였던 셈이다. 결론은 도민에게 복지 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는 말이다. "아나 콩콩"인 것이다. 이런 홍 지사에게 아이들을 위해 측은지심이라도 가져 달라는 건 야바위꾼에게 내 꼭 이길 터이니 내기를 계속 하자는 것과 같다.

이러니 도지사께 제발 야바위 사기만은 그만치시라고, 자식 밥값 뺏어 도박하는 일은 그만하시라고 그리고 무상급식이 아닌 학교급식이라고 바르게 인지하시라고 되짚어 청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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