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예전에 운동을 좀 한다하면 종목에 관계없이 힘깨나 쓰고 다소 험악한 친구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 당시엔 이 운동이란 걸 배우거나 즐기는 방식이 아주 미개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딱히 격투기가 아니라 단체운동도 마찬가지여서 축구부나 야구부 부원들은 거의 수업에 참여치 않고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었으니 학업이나 교우 관계도 단절될 수밖에 없어 이 친구들이 내세울 건 단련된 신체에 근거한 힘 자랑 뿐이었으리라.

2002년, 히딩크의 마법으로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내기 이전까지 우리는 운동은 몸만 쓰는 기계적인 행위로 생각했었다. 히딩크는 우리에게 시스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이후 이런 접근 방식은 비단 축구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출신 메이저리거들이 훌륭한 활약들을 펼치고 있는 최근에는 투구수가 선수생명에 얼마나 중요하며 상대에 대한 분석이나 천적관계 등 데이터가 대단히 용이한 확률적 근거로 승부의 분수령이 됨을 알고 있다. 심지어 게임을 할 때가 아닌 휴식에 대한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현대사회에서 시스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의 효율적인 관리, 개인과 개인 또는 조직간의 효과적인 소통 그리고 국가기관의 정체성과 안정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적용이 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세월호사건에서도 우리는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무너져 내린 상황에 망연자실해야만 했다. 복잡한 구조일수록 시스템의 정밀하고 숙련된 구동은 더욱 중요하다.

스페인어로 '시스템'이라는 뜻을 가진 '엘 시스테마(El Sistema)'라고 하는 것이 있다. 엘 시스테마는 MB정부 시절, 우리에게도 적극적으로 접목이 시도된 제도인데, 원래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뜻하는 말이다.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이 재단은 1975년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설립하였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의 단원으로 출발한 엘 시스테마는 40여년이 지난 현재 200여 개 센터, 30만여 명에 육박하는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이 주축이 되어 32개 거점(기관)도시가 선정되어 음악을 통한 청소년의 종합적인 인성발달과 사회화에 기여하고 있고 2017년까지는 50여개 거점 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다.

엘 시스테마는 오케스트라를 통한 음악교육으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한다. 마약과 폭력, 포르노, 총기 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제시하고, 협동·이해·질서·소속감·책임감 등의 가치를 심어 주고 있다.

우리도 이른바 '꿈의 오케스트라'제도를 통해 개별화, 소외화되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꿈을 키워주고 있다. 사업의 진행방향이나 방법에 있어 다소간의 이견들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미래세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애정으로 이 사업을 수행한다면 조만간 아름다운 성과들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 본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로는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즈 등을 꼽을 수 있다.

엘 시스테마의 수많은 오케스트라 중 명문으로 꼽히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등은 해외공연까지 다니는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로서 방한연주를 통해 우리에게도 기쁨과 충격을 동시에 선사한 바 있다.

작년 여름, 잘쯔부르크음악제 기간에 여행을 간적이 있는데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메인으로 자리잡은 공연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일정상 관람은 하지 못했지만 빈민가 출신 지휘자와 아이들이 훌륭한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꿈을 성취하고 있는 장면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의 오케스트라'운동을 통해 청소년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어 나가겠다는 포부라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엘 시스테마'가 지닌 원래의 뜻을 제대로 헤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제도를 통해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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