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진 변호사

가짜 검찰관에게 속은 진짜(?) 변호사

수년 전 창원 변호사 시절, 김해 축협조합장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뿌린 혐의로 조합장 당선자 Y가 구속된 사건(농업협동조합법위반)을 맡아 변론 중이던 어느 날 신××라는 명찰과 신분증을 단 현역 육군대위가 불쑥 사무실에 나타나 ‘선배님!’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로 크고 피부가 뽀얀 팔등신의 미남이었는데, 자신을 대구 소재 육군 사령부 검찰관이며 Y가 자신의 이모부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농협법상 Y가 조합장 신분을 유지하려면 벌금형을 선고받아야 한다며 그 무렵 인근 창녕 축협장이 유사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판결문을 전해주면서 참고로 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도 제대 후 검사로 임관할 것이며 그래서 검사출신인 나를 선배님으로 모시겠으니 술을 한 잔 살 기회를 달라고 수 차례 간청하면서 약 1달 정도 사무실에 출퇴근하다시피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행 중인 사건 관계자와 사무실 밖에서 만난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술은 다음에 먹자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위 사건은 당사자와 변호사의 기대와 달리 1심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상급심에서 확정되는 바람에 Y는 조합장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검사출신 변호사의 판단력 부족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부산지검 특수부 검사실에서 전화가 와서 위 조합장 사건을 담당할 당시 신×× 대위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 신××가 현재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부산지검에 구속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구속영장 범죄사실을 팩스로 보내왔다.

그 범죄내용인즉, ①피의자 신××는 사기죄로 집행유예기간 중인 자인데, ②그의 하숙집에서 컴퓨터와 스캔으로 국방부장관 명의의 검찰관 신분증을 위조하고(공문서 위조), ③용산 역 부근에서 육군장교복을 사 입고 검찰관 행세를 하면서, 조합장 Y의 처남에게 접근해 위 사건을 벌금형으로 마무리 해주겠다며 그 비용명목으로 금 7천만원을 수령하고(변호사법위반), ④위와 같은 범죄로 고소를 당하여 수배 중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경찰관이 출동하여 검거하려 하자 위와 같이 위조한 신분증을 제시하며 현역 검찰관 행세를 하였다(위조공문서행사, 공무원자격사칭)는 것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사무실 직원들한테 부끄러웠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웠다. 명색이 검사를 십 수년 했고, 그걸 무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양 내세우며 변호사 영업을 해 온 사람이 위와 같은 전과자이며 가짜인 악질범죄자에게 속다니!

그럴 정도의 부족한 판단력으로 그간 어떻게 법조인 생활을 해왔는지 머리가 쭈뼛거렸다.

진짜가 가짜에 속는 이유

나는 그간 검사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라고 자랑삼아 말해왔다. 우선 한 달에 200여건 이상 처리하는 사건의 당사자를 다루고(각 사건마다 대개 가해자와 피해자, 참고인이 있으니 사건 처리를 위해 대략 500여명을 만나게 된다), 직무상 상명하복 관계인 거대한 경찰조직을 다루고, 무엇보다도 그 까다로운 기자들을 다루는 직업이라고.

그러다 보니 검사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사람을 척 보면 대충 알 수 있을 정도로 반 푼수는 된다고. 그렇게 자부해 온 내가 그렇게 허무하게 속았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있지만 나를 속인 가짜에게도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그는 완벽한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늘씬한 체격에 깨끗한 피부를 갖춘 미남형 얼굴, 그리고 한여름인데도 주름이 완벽하게 잡힌 멋진 육군대위 장교복에 국방부장관 명의의 검찰관 신분증을 패용한데다 그 자신 조합장 당선자 Y의 조카라고 했다.

둘째, 그는 속일 상대방의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
법무관 출신 법조인들에 의하면 법무관은 군복을 입고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내가 법무관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 한여름에 육군 장교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셋째, 그는 상대방의 신뢰를 받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
그가 참고자료로 구해온 판결문은 불과 얼마 전 인근법원에서 선고한 유사사건의 판결문으로 본건에 매우 유용한 자료인데, 변호사인 나는 부끄럽게도 그런 판결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당사자의 각별한 신뢰를 얻어 내가 받은 수임료의 20배가 넘는 거액을 받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껍데기가 가짜만이 사이비인가

그렇다 해서 나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나는 당사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이다.

만약 내가 위 사건 당사자에게 나를 태산같이 믿고 따를 정도로 신뢰를 주었다면 위와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당사자가 거액을 사기 당하는 또 다른 아픔을 겪지는 않았으리라!

최근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가짜소동이 빈번하다. 나는 그 원인을 번듯한 간판을 단 진짜들이 진짜 노릇을 하지 못한 탓으로 본다.

우리 사회에는 가짜보다 못한 진짜가 수두룩하다. 한 번 취득한 외국 명문대 박사학위를 간판으로 학문연구라는 「염불」 보다 명성과 경제적 수입이라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교수들, 한 번의 사법시험 합격으로 평생을 보장 받았다는 듯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들, 결국 이들은 껍질은 진짜이나 알맹이는 텅 빈 가짜인 셈이다.

이러한 무늬만 진짜이고 알맹이는 가짜인 사이비(似而非)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한 가짜소동은 계속 일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사이비 여부는 간판 내지 형식의 진위(眞僞)가 아니라 내용과 실질의 존부(存否)에 달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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